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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라 다문화 가족들 “미치광이 탓 서로 총 겨눌까 두렵다”[사람, 세계]

입력 | 2022-03-02 03:00:00

이웃 두 나라 혼인 등 인연 많아
“가족간 전쟁 같은 상황 마음 아파
양국 모두에게 비극” 한목소리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로나 체르카스키 씨(왼쪽)의 어릴 적 가족사진. 사진 출처 트위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은) 제 엄마가 아빠를 공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러시아인 어머니와 우크라이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알로나 체르카스키 씨(45)는 지난달 28일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체르카스키 씨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주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도 매년 여름방학이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 있는 친조부모 집을 찾아 동네의 우크라이나 아이들과 방학을 보냈다. 그는 성인이 된 후 영국 런던에 살면서 자신의 다문화 배경을 늘 자랑거리로 여겨 왔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로는 오히려 고통의 씨앗이 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댄 허버드 씨(64)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어머니와 우크라이나 출신인 증조할머니가 집에서 함께 파이를 만들면서 서로의 억양을 흉내 내며 웃고 떠들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현재 허버드 씨의 친척들은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는 “군에 입대할 나이가 된 사촌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될까 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며 “미치광이의 환상 때문에 내 사촌들이 서로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두렵다”고 NYT에 말했다.

카자흐스탄 여배우 나탈리야 일리나 씨는 친할머니가 러시아인, 외할머니가 우크라이나인이다. 일리나 씨는 인도 언론 인디아타임스에 “내 가족끼리 전쟁을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지금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진다”며 “요즘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국민은 모두 정치의 피해자”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러시아 최대 부호 중 한 명이자 러시아 민간은행인 알파뱅크 설립자인 미하일 프리드만은 최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달 27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이메일에서 “나는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태어나 17세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우크라이나 시민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인 리비우에 살고 있다”며 “나는 또한 러시아 국민으로서 러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인생의 많은 부분을 여기서 보냈다”고 했다. 이어 “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 모두에게 깊은 애착을 갖고 있으며 현재의 갈등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전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