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의 한 호텔 내 텅 빈 로비에서 소년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호텔에 있던 기자가 우연히 촬영한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계 피아니스트가 겪은 비극을 그린 영화 ‘피아니스트’에 비유하는 의견도 등장했다. 휘트니 리밍 기자 트위터 캡처
그 때 어디선가 침울하지만 절제된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리밍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찾으려 복도 끝으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텅 빈 호텔 로비에 있는 흰색 피아노 앞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리밍은 곧바로 카메라를 꺼내 소년의 연주 모습을 담았다. 그가 연주한 곡은 ‘학교 가는 길(Walk to School)’. 2020년 아마존 프라임 공상과학 드라마 ‘루프이야기’에 삽입된 OST였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극도의 혼란이 벌어지던 상황에서 묵묵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년의 모습은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리밍이 WP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소년의 영상은 1일까지 조회수 900만회를 넘기며 널리 확산됐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다룬 영화 ‘피아니스트’를 떠올렸다. 게시물에는 ‘침몰하는 배에서 악단이 연주를 계속하는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같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등 20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공동작곡가인 모건 역시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하며 “누군가 삶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 우리 음악으로 위안을 얻었다는 데에 말 못할 감동을 받았다. 소년이 노래에서 위안과 희망을 찾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은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힘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피아노를 연주한 소년이 누구인지 등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리밍은 “취재 때문에 (촬영) 몇 분 뒤 호텔을 떠났는데 이후 소년과 그의 가족을 다시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