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초기 대무신왕을 소재로 한 만화를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넥슨이 1996년 세계 최초로 내놓은 ‘다중접속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인데, PC 통신으로 접속한 다수 참가자들이 함께 즐기는 새로운 차원의 게임이었다. ‘바람의 나라’는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며 뒤이어 나온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함께 한국 게임산업 도약의 디딤돌이 됐다.
▷며칠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김정주 넥슨 창업자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고인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다 6개월 만에 그만두고 1994년 자본금 6000만 원으로 넥슨을 창업했다. 국내 기업들이 생소한 온라인게임 사업계획서를 거들떠도 안 보던 시절이었지만, 네트워크 게임의 가능성을 확신한 그는 테헤란로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끈질기게 게임을 만들었다. 이후 퀴즈퀴즈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온라인 게임 전성기를 이끌었다.
▷고인은 일찌감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1998년 미국에서 영문판 ‘바람의 나라’ 상용서비스를 시작했고 일본 미국 유럽에 잇달아 법인을 세웠다. 2011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것도 게임 종주국 일본을 잡아야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에서 사람들이 닌텐도 게임기를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이 늘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중국과 미국 등 후발주자들이 추격하자 고인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에 매달리는 업계의 건전한 발전을 흐린다는 비판도 받았다.
▷사업 방식과 관련해 논란도 있었지만 1세대 벤처기업인인 그의 성공이 많은 청년들에게 영감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공계 인재들이 제2의 김정주를 꿈꾸며 벤처 업계에 뛰어들었고 고인은 맏형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업 경영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큰 딜을 한다는 게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두려워요. 늘. 그런데 제가 깡통 차는 건 전혀 두렵지 않아요. 원래 맨몸으로 태어났는데 돌아간다 해도 뭐 어때요”라고 했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