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문화부 차장
“정치인으로 돌아가기 전 자기 홍보를 위한 무리수였다.”
최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잇단 행보를 놓고 많은 이들이 내놓은 평가다. 지난달 17일 황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성과를 알리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황 장관은 해당 간담회 성격에 대해 “특정 예술인을 배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반성의 말씀을 드리는 자리”라고 말했다. 제도 개선 이행협치추진단이 이달 말 백서 발간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한다는 것 외에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황 장관이 간담회를 연 건 20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이틀 뒤였다. 현 정부의 ‘실세 장관’으로 불리는 황 장관이 직접 나서 정권 교체의 발단이 된 원인 중 하나인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현 정권의 성과를 부각한 점은 여러 해석을 낳을 여지가 상당했다. 일각에선 그가 정치인 출신이란 점을 들며 비판했고, 황 장관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발표 내용에 알맹이가 없고, 시기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게다가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공개 사과와 반성은 전임 장관 때도 숱하게 이뤄졌다. 그의 해명은 여러모로 궁색했다.
황 장관의 발언을 접한 여론은 들끓었다. 누리꾼은 ‘해명이 궁색하다’ ‘정부의 대응이 이렇게 소극적이니 중국이 한국을 소국(小國)이라 주장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일주일 새 두 번에 걸친 황 장관의 기자간담회는 ‘편 가르기’ ‘선거 개입’ ‘생색내기’ 논란만 낳았다.
황 장관은 취임 후 가장 먼저 찾아뵌 인물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을 꼽았다. 아마도 문화 수장으로서의 역할 등 다양한 조언을 얻고자 선배인 이 전 장관을 찾았을 테다. 이 전 장관은 생전 동아일보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요즘 지식인들은 정치, 경제에 종속됐다. 지식인이 제 역할을 못 하니깐 편 가르기와 진영 싸움판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지식인을 향한 지적이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및 문화예술인과 관련된 정책을 담당하는 문체부 장관에게도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싶다. 황 장관은 ‘정치에 종속돼 편 가르기와 진영 싸움판을 만들지 말라’는 이 전 장관의 충고를 새겨듣길 바란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