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2일(현지시간) 박희관씨가 전달한 농장 포격 상태. 웅덩이처럼 움푹 파인 포탄 흔적이 60개가 넘는다. 오른쪽 사진은 인근 지역 모습. 포격이 떨어진 후 붉은 화염이 치솟고 있다.(독자 제공)© 뉴스1
박희관씨가 머물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 위치. © News1
러시아군이 2일(현지시간) 침공을 시작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에 한국인이 남아있다. 이동 위험과 건강 문제로 우크라이나 탈출을 포기한 우리 교민은 모두 26명. 이 가운데 한 명인 박희관씨(37)는 삶의 터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생사를 건 사투 중이다.
박씨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2일까지 메신저를 통해 뉴스1에 현지 소식을 전해왔다. 마을에 전쟁이 시작되면서 하루, 이틀씩 연락이 끊어지는 고비가 계속됐다.
2일(현지시간) 박희관씨가 머물고 있는 지하 벙커 내부 모습. 박씨가 운영하는 농장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까지 13명이 대피 중이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보인다. (독자 제공)© 뉴스1
박씨는 “무조건 살겠다는 생각과 내 아내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뿐”이라며 “지금 제게 가장 필요한 건 오직 안전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우크라이나인 아내와 함께 마을에 있는 개인용 벙커로 대피한 상태다. 벙커는 전시를 대비해 처가에서 미리 만들어둔 시설로, 집과는 5분가량 떨어져 있다. 박씨가 농장 직원들과 두려움에 떠는 직원 가족들을 직접 불러모아 현재 13명이 벙커에 함께 몸을 숨기고 있다.
박씨는 “제가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조국을 사랑하는 아내를 지켜주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했다”며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한국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저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일(현지시간) 박희관씨가 전달한 지하 벙커 내부 모습. (독자 제공)© 뉴스1
러시아군이 도시 점령을 시작하면서 집 바로 앞까지 포탄이 날아들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박씨는 벙커에서 3㎞ 떨어진 농장과 사업장 확인을 위해 밖을 나서는 시간 외에 벙커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그는 “바깥 상황을 알 수 없고 아무도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닷새 전 농장에 포격이 60여발 떨어진 것을 봤고 현재는 피해가 더 심각해졌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벙커는 인터넷과 전기 설비를 갖췄지만, 연결이 불안정하다. 감자를 포함한 식량은 보름치가 남아있다. 침구류와 의복 같은 필수 휴대품은 모두 구비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박씨는 “평소에는 반지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머물다가 소리가 매우 크거나 반복적이면 (벙커 내에 따로) 준비한 공간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2일(현지시간) 박희관씨가 전달한 기도하는 아내 모습. 박씨는 “한국에 전쟁이 나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는 아내 말을 듣고 “부끄러워졌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뉴스1
헤르손 외곽 지역이 러시아군에게 장악당하면서 식료품을 포함한 물자 반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아직 전력과 수도는 연결돼 있는 상태로 전해진다.
“남아있는 한국인은 대부분 저처럼 가족의 나라를 함께 지키고 계신 분들일 겁니다. 잔류 교민들에게도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소식은 ‘다시 찾아온 평화’이길 바랍니다.”
박씨는 언제 다시 이어질지 모를 연락의 끝인사를 남기고 벙커로 돌아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