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선수들의 출전 여부를 신경 쓰지는 않지만 이 기회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커요.”
여자 피겨 스케이팅 ‘간판’ 유영(18·수리고)은 21일부터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열리는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피겨여왕’ 김연아(32) 이후 국내 여자 피겨 선수 중 세계선수권 메달을 딴 선수는 없다. ISU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를 제한하는 징계안을 발표해 그 어느 때보다 유영의 메달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2일 경기 구리시에서 만난 유영은 10대답게 모든 질문에 ‘솔직한’ 답변을 쏟아냈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마친 직후 휴식 대신 전국겨울체육대회에 참가한 이유에 대해서도 유영은 “한국에서 열리는 큰 대회이기도 하지만 고등부 메달을 따두면 대학 입시 등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해 고3이 된 유영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 이후 한국 여자 피겨 선수 중 올림픽 최고 성적(6위)을 낸 것에 대해서도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유영은 올림픽을 앞두고 대외적으로는 톱10 진입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본인은 사실 톱5를 노리고 있었다. “조금 더 욕심 부리자면 톱5에 들고 싶었는데 6위를 한 것이 조금 아쉽죠.”
성적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지만 올림픽 출전 자체는 유영에게 큰 자산이 됐다. 큰 무대에서 긴장감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웠고, 논란은 있었지만 세계 여자 피겨 최강이라 불리는 ‘러시아 삼총사’와 경쟁을 해 본 것 역시 큰 공부가 됐다고 했다.
유영은 “여자 피겨선수 최초로 쇼트 프로그램에서 90점을 넘어선 카밀라 발리예바를 직접 보면서 강한 정신력을 소유했다고 느꼈다”며 “트리플 악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하는 알렉산드라 트루소바를 보면서 굉장히 큰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보다 본인이 올림픽에서 잘한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미소를 잃지 않고 연기를 한 것”을 꼽았다.
올림픽을 마친 뒤 인기가 급상승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워 수가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유영은 아직 본인이 여자 피겨 아이콘이 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유영은 “제가 감히 연아 언니의 자리에 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아직은 연아 언니가 열어둔 길을 따라가면서 제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는 중”이라며 “힘들 때 연아 언니의 다큐를 찾아보며 ‘언니도 저렇게 힘들었지만 성공했으니 나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동기부여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유영은 곧장 인근에 있는 지상훈련장으로 향했다. 7살이던 2010년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뒤로 늘 해오던 훈련이지만 최근에는 지상훈련량을 늘렸다고 했다. 자신의 새로운 목표인 쿼드러플 점프(4회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점프 높이와 회전력 연습 때문이다. “옛날에는 몸이라도 되게 젊고 가벼웠는데 고3이 되면서 몸이 늙어지는게 느껴지더라(웃음). 그런 애로사항이 있지만 아직 젊으니까 더 열심히 해서 꼭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발목 등 부상과 매일 반복되는 훈련이 힘들다던 소녀 유영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리=김정훈 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