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기자
한국은 수입차 브랜드의 격전지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국내에서 143만여 대의 국산차가 팔릴 때 수입차는 31만여 대가 새로 등록됐다. 새로 판매된 차 100대 중 18대가 수입차다.
수입차는 같은 급의 국산차보다 아무래도 비싸고 유지비 부담도 크다. 이런 수입차 대중화의 가장 큰 배경은 당연히 늘어난 소득이다. 3만5000달러(약 4200만 원)를 넘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수입차 구매를 견인하고 수입차 브랜드는 이런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 새 모델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장소로 한국을 선택하는 브랜드도 있다.
수입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는 각 브랜드가 가진 특유의 이미지를 함께 누릴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이, BMW는 매끄러운 주행성능이 강점으로 꼽힌다. 안전성으로 유명한 볼보나 미국 차 특유의 감성을 가진 지프 등까지 수입차는 소비자가 원하던 효용과 더불어 일종의 ‘감성’까지 제공하며 시장을 키우는 중이다.
하지만 수입차가 늘면서 이 차들은 점점 흔해졌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 국내에서 한 해에 2만∼3만 대씩 팔린다. 자신의 차가 ‘차별화’되길 원하는 소비자라면 다른 브랜드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최근에 이런 수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브랜드는 독3사보다 비싸면서 강력한 주행성능을 자랑하는 포르셰다. 2019년 4200대 수준이었던 포르셰의 국내 판매량은 지난해 8400대를 넘겼다. 럭셔리카 브랜드인 벤틀리 역시 2019년 120여 대였던 판매량이 지난해 500여 대로 크게 늘었다.
수억 원에 이르기도 하는 이런 브랜드의 차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빠르게 커지는 수요를 성능만으로 다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다. 한 럭셔리카 브랜드의 한국 책임자는 명품 백을 사려고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한국의 백화점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보다 더 비싼 차를 선택하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수입차 전성시대의 배경에는 재미난 사실도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0∼20년 동안 높아진 소득이나 자산 가치를 감안하면 수입차 가격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는 사실이다. 2005년에 6000만 원대였던 BMW 5시리즈의 시작 가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생산을 자동화한 완성차 기업들은 오랫동안 가격을 별로 높이지 못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