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트리트]〈9〉 용산구 땡땡거리-용리단길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백빈건널목 앞에 선 관광객이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 기차가 하루 300번 지나가며 건널목 경고음이 그치지 않는 탓에 ‘땡땡거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곳곳에 위치한 방앗간, 노포 맛집 등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조선 퇴직 궁녀 살던 ‘백빈건널목’…경고음 딴 ‘땡땡거리’로 더 유명
40년 장사 ‘용산방앗간’ 랜드마크…백반집 등 소박한 맛집도 인기
신용산역 ‘용리단길’ 꾸준한 입소문…“노포-신생 핫플 조화가 매력”
“땡땡.”
귀를 먹먹하게 울리는 경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나타났다. 노란색 형광조끼를 입은 역무원은 익숙한 듯 나와 사람들을 철길에서 한 발짝 물러서게 했다.
○ 고층 건물 뒤로한 도심 속 기찻길
‘도심 속 기찻길 땡땡거리 걷기’ ‘서울의 향수가 느껴지는 철도 건널목’을 서울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드문 거리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15일 용산역 1번 출구로 나오니 높게 뻗은 고층 건물이 보였다. 한강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니 역 인근의 세련된 빌딩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지붕이 낮은 집과 오래된 가게들이 곳곳에 나타났다.
계속 걷다 보니 평범한 도로와 맞닿은 기찻길, 백빈건널목이 나타났다. 하루 약 300차례 열차가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울리는 건널목 경고음 소리를 듣고 있으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언젠가 이런 곳들이 재개발로 없어질 것에 대비해 용산구는 땡땡거리 같은 명소들을 기록해 두는 ‘지역사(地域史) 기록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빈건널목은 감성적인 영상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유튜브에 ‘땡땡거리’나 ‘백빈건널목’을 검색하면 ‘도심 속 기찻길 땡땡거리 걷기’ ‘서울의 향수가 느껴지는 철도 건널목’ 같은 제목의 동영상이 나온다. 유튜버들은 덜컹대며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배경음으로 고즈넉한 골목길 풍경을 영상에 담아낸다. ‘나의 아저씨’(tvN), ‘경찰수업’(KBS)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기찻길 주변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풍경이 곳곳에 나타났다. 백빈건널목 바로 옆 ‘용산방앗간’은 땡땡거리의 랜드마크다. 녹슨 붉은 간판이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용산에서 40년째 방앗간을 하고 있다는 사장 박장운 씨(65)는 “예전에 동네 할머니들이 주로 찾아왔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가래떡 몇 봉지씩을 사가곤 한다”며 웃었다. 방앗간 외에도 땡땡거리에는 ‘오근내 닭갈비’, 백반집 ‘여천식당’ 등 소박한 맛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 개성 있는 핫플, MZ세대 유혹하는 ‘용리단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명동이나 종로 같은 대형 상권들은 힘이 약해졌지만 용리단길의 작은 가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며 더욱 핫해졌다. 2018년부터 용리단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공나현 씨(37)는 “주말에는 맛집을 중심으로 손님들이 긴 줄을 서곤 한다”며 “오래된 맛집과 새로 생긴 핫플레이스가 조화를 이뤄 용리단길이 더 사랑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주변 새로운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지만, 작은 전통 가옥과 상점들도 남아 있어 정감있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용산역 1번 출구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 철도회관 마당의 연복사탑중창비 등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조선시대 교통의 요충지이자 물자 집결지였던 곳이라 역사적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