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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밀가루도 동났다”… 침공 장기화에 식량-의료대란

입력 | 2022-03-04 03:00:00

유통망 붕괴로 상점 매대 텅비어…키이우 1만5000명 지하철역 대피
전기 끊겨 수술 못하고 의약품 부족…폭격 피하려 지하에 분만실 설치도



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남쪽에 있는 한 상점의 매대가 텅 비어 있다. 독자 제공


러시아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극도의 고통을 겪고 있다. 식량난으로 상당수가 겨우 통조림으로 연명하고 전기와 수도 역시 대부분 끊겼다. 수도 키이우에서만 최소 1만5000명의 시민이 지하철역을 집처럼 여기며 견디고 있다.

2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우크라이나 상당수 상점의 매대가 비어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데다 상당수 남성들이 전선에 나가 유통망이 사실상 붕괴된 여파다. 상당수의 주유소 또한 기름이 떨어져 아예 문을 닫았다. 소셜미디어에도 텅 빈 매대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현지 교민들은 지난달 28일부터 키이우에서도 주식인 빵과 햄의 공급이 끊겼고 최근에는 밀가루마저 동났다고 전했다. 키이우 남부에 거주 중인 교민 임모 씨(51)는 “인근 공장에서 긴급히 밀가루를 생산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사람들이 그 소식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전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2일 “지하철역에 1만5000명이 대피해 있다”고 밝혔다. 키이우의 지하철역은 지난달 26일부터 대피소로만 사용되고 있다. 매트리스 1개를 서너 명이 나눠 쓰며 쪽잠을 청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하철역에도 오지 못한 일부는 길거리 벤치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의료 붕괴도 가시화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발전소를 폭격하는 바람에 수술 등을 하기도 어렵고 의약품도 매우 부족하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최대 어린이병원 ‘오흐마디트’는 응급외상 병원으로 바뀌어 부상자를 받고 있다. 일부 산부인과는 폭격 위험이 적은 지하에 분만실을 만들어 임신부를 돌보고 있다. 임 씨는 “사람들이 약품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지만 문을 연 약국이 거의 없어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곳곳의 도로에서도 사람이나 차량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달 말만 해도 폴란드 등으로 탈출하려는 행렬이 가득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성인보다 취약한 어린이들의 고통은 더 심각하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750만 명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기아 등 각종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더 많은 어린이가 희생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