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일주일 만에 헤르손을 점령했다. 아름다운 남부 항구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모두 잿빛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공습을 피해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하려다 다치거나 러시아군 탱크가 지나다니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거리에는 러시아 탱크들이 진동을 울리며 지나가고 지속된 폭격으로 모든 건물들의 유리창은 파괴돼 곳곳이 화염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다. 도로가 완전히 파괴돼 색을 잃고 까맣게 변한 도시에는 찢겨진 우크라이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이고르 콜리카예프 헤르손 시장은 “시내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전혀 없고, 생존을 바라는 민간인들 뿐이다. 러시아군이 행정청사를 완전히 점령했다”라며 “우리는 현재 식량이나 의약품 등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점령된 도시 헤르손의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러시아 군인들은 ‘서로 익숙해지고’ 있지만 식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헤르손에 살고 있다는 이 주민은 AP통신에 “아침 공습이 울리기 2~3시간 전 안전한 시간이라고 생각되는 때 여럿이 지하에서 나와 열린 가게를 찾는다”라며 “큰 가게들은 문을 닫았거나 이미 러시아군에 의해 통조림, 보드카 등의 식료품이 바닥난 후다. 식료품을 사러가려다 쓰러지는 가로등에 다리가 깔린 사람도 봤다”라고 말했다.
실제 SNS에는 민간인 피해를 알리는 영상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피가 흐르는 다리를 붙잡고 울부짖는 남성을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몰려들지만 의약품이 없어 옷으로 지혈하며 다급해하는 모습이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아프게했다. 일가족이 타고 피난을 가던 것으로 추정되는 차가 새까맣게 그을려 아기의 장난감이 불타고 있는 사진도 공개됐다.
그는 “대부분 주민이 러시아 군대가 침략하기 전에 식량을 비축했으나 이제 부족해지고 있다”면서 “이제 시내에는 식량 재고가 남은 가게가 거의 없는 것 같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 굶어 죽을 것”이라며 비관했다.
동부 도시 하르키우 상황도 처참하다. 하르키우 진입을 시도하며 러시아 군대는 경찰청, 대학, 거주 지역과 유치원과 어린이 놀이터까지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하르키우 역시 폭탄 공격으로 주거 지역의 지붕들이 모두 날아가고 건물이 붕괴됐으며 매일 생존자 수색을 위해 구조대가 출동해 작업을 벌이는 소리로 혼란스럽다.
하르키우 주민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트위터에 “오늘 아침은 이 소리로 깼다. 귀를 찢는듯한 폭발음보다는 낫다”라며 러시아 군 탱크가 집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공개했다.
그는 “식수는 막바지에 다다랐고 상황이 매일 악화되고 있다”며 “매일 반복적으로 울리는 공습 경보 소리와 사이렌 소리에 어린 내딸은 잠을 설친다”라며 흐느꼈다.
이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방 7개짜리 벙커는 하르키우 국립 의과대학(KNMU)의 한 건물 지하 1층이다. 가족들의 사진과 휴대폰, 전공 책 일부만 챙겨 나온 그는 담요를 덮고 친구들과 앉아 고국의 이야기를 하다 잠든다. 매일 한끼만 먹고 버티고 있지만 식량은 이틀치만 남았으며 식수가 부족해 수돗물을 마시고 있다.
아유쉬는 “우크라이나 자원봉사자들이 가끔 빵을 전달해주지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며칠 만에 밖으로 나간 적이 있다. 슈퍼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공습 경보가 울려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거나 집어 뛰어 나왔다. 사이렌이 울리면 사람들은 대피소로 돌아가기 위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아유쉬는 “우리는 점심을 먹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그룹을 만들어 위층으로 가끔 올라오지만 가능한 빨리 내려간다. 어제는 점심을 먹는 도중 갑자기 공격이 시작돼 밥을 먹다가말고 지하벙커로 뛰어내려 왔다”라고 말했다.
이고르 콜리카예프 헤르손 시장은 “우리는 행정시설을 잃고 러시아 군대에 점령됐으나 우리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인도 유학생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위해 긴급 전화를 개설하고 국적을 가리지 않고 선착순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