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예상보다 빠르게 고립화하며 국제사회로부터 단절되고 있다. 미국, 유럽의 서방은 러시아를 오가는 하늘길과 물길을 사실상 차단했고 러시아에서 인적이동과 물류는 고인물처럼 국경을 넘지 못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서방은 초고강도 경제제재로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끊어 놓을 심산이다. 스위프트로 불리는 국제결제시스템 차단이라는 ‘금융핵무기’는 러시아 경제에 강력한 하방 압박을 가한다. 일반 러시아 국민까지 제재의 고통을 체감하며 사회혼란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졌다.
◇독자경제 노선 ‘역효과’
하지만 세계 무역은 대부분 미 달러, 유로로 결제되기 때문에 러시아가 서방의 기축통화와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다. 러시아가 미 달러, 유로의 의존도를 다소 낮췄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오히려 서방이 러시아의 고립화를 더욱 용이하게 도운 셈이 됐다고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설명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아담 포센 대표는 러시아의 경제 고립화 정책이 역효과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광범위한 국제무역 시스템에 좀 더 통합되고 관련성을 높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수준의 고강도 금융제재는 서방 교역국들의 비용 부담을 높여 외교적 해법의 필요성을 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경제 고립화를 추구하며 자주독자 노선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서방이 연관성이 낮아진 러시아를 고립화하는 데에 비용부담이 낮아져 더 쉽게 러시아와 단절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서로 연관성이 높으면 공격적 방식으로 차단될 위험에 오히려 덜 노출된다고 포센 대표는 말했다.
◇“러, 국가부도 임박…2Q GDP 35% 증발”
미국의 국제신용평가업체 S&P는 러시아의 국가부도가 임박했다고 평가했다. S&P는 이날 루블화 표시 국채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BBB-’(투자적격 최하위)에서 9단계 낮은 ‘CCC-’로 강등했다. CCC-는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 국가부도) 임박상태를 의미한다.
S&P는 전망도 부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러시아 중앙은행이 제재를 받으며 이용가능한 외환보유액도 반토막이 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달 만기가 도래하는 러시아 국채 규모는 7억달러 수준이다. 제재가 없었더라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풍부한 외환보유액 덕분에 상환력이 충분했지만 이 풍부한 외환보유액에 접근이 차단되면서 러시아라는 국가의 상환력은 크게 떨어졌다.
5년짜리 크레딧 디폴트 스와프는 지난달 중순 200베이시스포인트(bp, 1bp=0.01%p)에서 이번주 한때 2000bp로 치솟았다. 이 스와프는 러시아의 디폴트에 대비하는 보험비용으로 러시아 투자에 대한 일종의 위험수당이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러시아 부도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반전시위, 해외도피 잇달아
러시아 전역에서 반전시위가 잇따르고 불안한 러시아인들은 해외 도피를 시도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인권감시단체 OVD-Info 집계 결과 침공을 시작한 지난 24일부터 정부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국내 100여개 도시에서 체포한 반전 시위대원은 7626명에 달했다.
지난 1일에는 유명 사회 운동가이자 예술가인 옐레나 오시포바(77)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던 중 체포됐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기도 하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당국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징집 연령에 해당하는 남성들 출국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 중동 등 해외로 도주하는 사례들이 잇따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스크바의 한 29세 남성은 “내일 징집령이 도입돼 출국할 수 없을까봐 두렵다”며 더 이상 러시아에 사는 게 불가능할 것 같다며 주말 떠나는 이스탄불행 항공편을 구입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