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 대선 속 “반드시 투표” 90% 넘어 “이대로는 모두가 불행” 대선 이후가 걱정
길진균 정치부장
‘정치교체’냐 ‘정권교체’냐를 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이 격돌했다. 여권 후보가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외쳤다. 그러자 야당 후보는 “정치교체는 정권교체로만 가능하다”고 맞섰다.
지금 얘기가 아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선두를 다퉜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목소리다. 2017년엔 정권교체론이 승리했다. 반면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교체’를 앞세워 대권을 거머쥐었다. 유권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선거에 으레 등장하는 ‘교체’ 프레임의 연장선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바꿔 열풍’이 거세다. “저 후보는 바꿀 자격조차 없다”는 네거티브까지 더해졌다. 비호감 대선이라는 혹평 속에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가 늘어날 듯한데, 실상은 반대다. 이달 1, 2일 조사한 동아일보 대선 4차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90.2%로 집계됐다. 지난달 중순 3차 여론조사 때 86.8%, 지난달 초순 2차 여론조사 때 84.5%보다 오히려 많아졌다. 5년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답변이 90%에 이르지 못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민주당은 2016년 총선부터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 이어 다시 2022년 대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내리 5연승이라는 민주화 이후 전례가 없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금은 선거 때니까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낮추고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가 옳았다” “민심은 역시 우리 편”이라며 다시 오만과 무소불위의 옛 민주당의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돼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여당은 172석이라는 절대 다수 의석을 확보한 제1야당을 상대로 한 혹독한 대결 정국을 돌파해야 한다. 민주당이 반대할 경우 새 정부는 정부조직개편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각 구성조차 어렵다. 신구 권력의 극한 대립 속에 적폐청산을 앞세운 검찰발(發) 사정 정국이 열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민통합과 협치는 다시 멀어질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1년 넘게 치열한 대선 레이스를 거치며 각 당은 물론이고 보수-진보 진영으로 나뉜 국민들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누가 당선되든 40% 남짓 득표가 최대다. 당선된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절반의 국민은 환호하는 상대 진영을 바라보며 열패감에 시달릴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골목상권 불황, 일자리 없는 청년, 북한의 새로운 도발 위기까지…. 말 그대로 나라 안팎이 암울한 상태다.
대선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 줄 새로운 리더의 탄생을 여는 장이다. ‘교체’는 목적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이대로라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1950년대의 정치구호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누가 되든 당선 후 새 대통령의 첫 국정 과제는 그동안 쌓인 분노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