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연·사회부
서울 관악구에 있는 ‘베이비박스’(양육을 포기한 부모가 익명으로 아동을 두고 갈 수 있는 시설물)에는 한 해 100∼200명의 영아가 유기된다. 지난해에도 아동 113명이 이곳에 남겨졌다.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 범죄를 방조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지만 영아가 길바닥에 버려지는 것보단 낫다는 의견도 있다. 베이비박스가 2009년 처음 마련된 후 13년 동안 찬반 의견이 대립해 왔다. 그러나 당장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은 것도 현실이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는 이 시설에 대해 정치권과 정부는 침묵해 왔다. 20대 대선 주요 후보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공약집에 ‘국가의 아동 보호 책임 강화’를 명시했지만 유기아동과 관련해 구체적인 정책은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베이비박스가 미법(未法)의 영역에 있더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위 관계자는 한 인터뷰에서 “(윤 후보가) 베이비박스의 역할을 높게 평가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관련 공약은 찾기 어렵다.
정치가 무관심한 사이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은 대부분 입양가정 대신 보육원 등의 시설로 옮겨졌다. 가능한 한 ‘아동이 가정과 유사한 환경(입양·위탁가정)에서 보호돼야 한다’는 아동복지법 취지가 무색한 현실이었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데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마저 책임을 방기하면 유기아동은 ‘두 번 버려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아이를 가능한 한 좋은 환경에서 길러야 한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아동을 최우선으로 하는 유기아동 보호 방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유채연 사회부 기자 y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