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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신의 도구’ 찾아낸 여성 과학자의 인간적 면모

입력 | 2022-03-05 03:00:00

◇코드 브레이커/월터 아이작슨 지음/조은영 옮김/696쪽·2만4000원·웅진지식하우스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왼쪽)가 크리스퍼(CRISPR)를 이용한 DNA 편집기술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함께 202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여성만으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건 이들 이 처음이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유전자 가위’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DNA를 인간이 인위적으로 편집할 수 있게 된 현실은 난치병을 퇴치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이 시대의 프랑켄슈타인’이 창조될 수 있다는 불안을 동시에 선사한다.

2020년 노벨화학상은 유전자 가위에 돌아갔다. 엄밀히 말하면 크리스퍼(CRISPR)를 이용한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에게 돌아갔다. 여성들만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첫 사례다. 이 책은 그중 한 주인공인 다우드나의 일대기다. 동시에 크리스퍼 가위 기술이 탄생한 배경과 발견, 발전, 전망을 과학에 관심 있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상세히 전달한다.

1980년대 생물학자들은 세균의 DNA에 ‘반복되면서 대칭을 이루는’ 독특한 코드, 즉 크리스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기능을 밝힌 이들은 요구르트 회사에서 일하는 식품과학자들이었다. 바이러스가 유산균에 침입하면 균은 이 바이러스의 DNA 일부를 잘라낸 뒤 자신의 DNA에 삽입했고 침입자에 대한 면역을 획득했다.

다우드나 팀이 이뤄낸 것은 세균의 방어전략인 크리스퍼를 인간의 도구로 가져온 일이었다. 연구팀은 세균이 바이러스의 DNA를 잘라내는 메커니즘을 밝혀냈고, 이를 통해 원하는 대로 생명체의 DNA를 편집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도 DNA를 자르거나 이어붙이는 기술은 있었지만 이제 가이드 역할을 하는 crRNA를 조작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정확하고 자유롭게 자르고 붙이기가 가능해진 것이다.

과학적 층위에서는 읽어 내려가기 까다로울 수 있지만 이 책을 한층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이 기술과 관련된 여러 과학자들의 협력과 우정, 질투와 배신이다.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는 우정과 반목을 거듭했다. 과학 매스컴이나 타인의 학술논문이 한 사람을 조명할 때 다른 한편은 불편해했고 사이는 점차 멀어졌다. 노벨상 공동수상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두 사람은 오랜만에 전화기를 붙들고 흉금을 터놓을 수 있었다.

다우드나와 특허권 분쟁을 펼쳐온 숙적 장펑과의 라이벌 관계도 흥미를 돋운다. 저자는 장펑의 진지한 인터뷰 자세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동료 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다는 혐의를 떨치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 아기라는 금단의 영역을 건드렸다가 범죄자로 낙인찍힌 중국학자 허젠쿠이와 다우드나 사이에도 탐색과 긴장의 시간이 이어진다.

유전자 편집기술은 불치병 퇴치의 희망과 맞춤형 도구인 간 출현의 공포를 동시에 안겨준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책은 자연히 유전자 조작과 관련한 윤리적 논의로 이어진다. 이 기술은 불치병에서 해방된 행복한 세상으로 인류를 데려다줄까, 아니면 악한의 손에 넘겨질 수 있는 ‘인간기계’를 양산할 것인가. 주인공 다우드나와 저자의 시각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의) 평균적인 능력을 향상하려는 시도를 막고 돌연변이를 수정해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만 계속한다면, 우리는 안전한 쪽에 머무를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