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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열흘째를 맞은 5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 러군 봉쇄 지역인 마리우폴과 볼노바하에서 민간인 탈출을 위한 일시·부분 휴전을 선언했지만, 끝내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됐다.
서방 정보당국은 남부 항구도시 헤르손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동부전선과 크림반도 남부전선을 잇는 전략 요충지 마리우폴 및 최대 물동항 오데사 등 남부 진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모스크바 시간으로 오전 10시(우크라이나 시간 오전 9시·한국시간 오후 4시)부터 ‘침묵체제’를 선포하고, 마리우폴과 볼노바카에서 인도주의 통로를 개방한다”고 밝혔다.
미카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도 트위터를 통해 “마리우폴과 볼노바카에 인도주의 통로가 열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확인했고, 마리우폴 시 당국은 “(현지시각) 오전 11시부터 5시간 동안 대피로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리우폴에서의 대피는 연기됐다. CNN에 따르면 마리우폴 시 당국은 오전 11시 30분쯤부터 러시아군의 포격이 다시 시작돼 시민들을 다시 대피소로 안내했다고 밝혔고, 러시아 국방부는 대피로를 열었지만 아무도 이용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번 합의를 이행하고 추가 확대해 더 많은 지역에서 민간인 대피로를 마련한다는 계획이지만,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대피시킨 뒤 공격을 강화해 마을 장악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편 러·우간 3차 협상은 주말 중 열릴 것이라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과 포돌랴크 우크라 대통령 보좌관이 밝혔지만, 아직은 장소와 일시를 협상 중인 것으로 보인다.
◇마리우폴·오데사 등 남부 요충지 진격 계속
아조프해를 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러시아군과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득세한 도네츠크주 최남단에 있는 인구 45만 규모 도시로, 함락 시 동부전선과 크림반도 남부전선이 하나로 이어져 러군의 동남부 우위가 막강해지는 전략 요충지다.
미국 디킨스 대학의 역사학 교수이자 러시아 전문가인 칼 퀄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마리우폴 지역에는 우크라이나가 해상을 통해 보급품을 전달받을 주요 항구들이 있다”면서 “러시아군이 이 지역을 장악할 경우 우크라군의 보급품 공급 능력이 저지된다”고 말했다.
오데사도 전쟁 전 우크라이나 해상 물동량의 3분의 2가 지나간 요충지인데, 인근 헤르손을 장악한 러군이 오데사를 향해 진격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관측된다. 러군이 오데사까지 점령할 경우, 우크라의 해상을 전면 차단하고 3면으로 에워싸게 된다.
영국 국방부는 “러군이 (헤르손과 오데사 사이에 위치한) 미콜라이우로 진격하고 있으며, 일부 병력은 바로 오데사로 진격하기 위해 미콜라이우를 우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불노바하·하르키우·체르니히우·미콜라이우 등 위태로워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현재 상황이 가장 위태로운 지역을 동남부 Δ마리우폴과 Δ볼노바하, 북부 Δ하르키우(제2도시)와 Δ체르니히우 및 남부 Δ미콜라이우와 Δ헤르손을 꼽았다.
이 중 영국 국방부는 Δ하르키우와 Δ체르니히우 Δ마리우폴 및 북부 또 다른 도시 Δ수미가 이미 포위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수도 키이우 전황과 관련해 레즈니코프 장관은 “러군이 주로 키이우를 포위하고 도시와 마을의 저항을 진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군의 저항과 공격 속도가 느려지자 러시아가 전술을 바꾸고 있다”면서 “주거용 아파트와 건물, 학교, 유치원, 병원, 교회, 성당, 기차역 등을 폭파하고 원전과 수력발전소 등 민간 인프라를 폭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차별 공습 위험…우크라 “영공 폐쇄” 재차 호소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전쟁 반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2022.3.5/뉴스1 © News1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자국 상공을 비행금지구역(no-fly zone)으로 지정해달라고 촉구했지만, 나토는 외무장관 특별 긴급회의를 열고 이를 거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의 절망을 이해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실행할 경우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본격적 전쟁’으로 돌입할 수 있다”고 했고,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시행하면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할 실질적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정부 및 시민들은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습을 우려, 재차 영공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고 CNN과 로이터 등 외신은 전했다.
이와 관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국가는 어디든 전쟁에 개입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대참사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커지는 인도주의 위기…난민 120만 명 넘어
전쟁이 열흘째로 접어들면서 4일(현지시간) 기준 누적 난민 수는 120만 명을 넘어섰다고 유엔난민기구(UNHCR)는 밝혔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총 120만 9976명이 전쟁을 피해 탈출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폴란드로 향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몰도바, 루마니아 등으로 건너갔다.
특히 UNCHR 측은 주말 중 난민 수가 150만 명까지 늘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필리포 그란디 UNHCR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난민 증가 속도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라며 이같이 우려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인도적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오는 7일 관련해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러, ‘가짜뉴스’ 처벌 강화에 서방 외신들 속속 철수 발표
전날 러시아에서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를 퍼트릴 경우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언론 관련 법이 새로 통과되면서 외신들이 속속 철수를 발표하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존 미클레스웨이트 편집국장 명의 성명을 내고 러시아에 있는 자사 기자들의 업무를 중단한다고 밝혔고, CNN 방송도 대변인을 통해 러시아내 방송을 중단하고 상황을 평가해 다음 조치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와 ZDF, 영국 공영 BBC, 캐나다 국영 CBC, 이탈리아 공영 RAI 등 비슷한 결정을 내리는 언론사가 늘고 있다.
특히 독일 ARD의 경우 소련 시절인 1956년부터 모스크바에 지국을 두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비롯한 소련 국가들과 러시아에 방송을 송출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