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이틀만에 휴지조각된 ‘휴전 합의’ 우크라 남동부 마리우폴-볼노바하…러軍, 도시 포위하고 미사일 포격 탈출하려 나온 시민들 ‘아비규환’…피란 이용 다리 폭격, 일가족 사망 러 장악 헤르손-자포리자 등에선 피란민에 발포-성폭행 증언도
러 폭격에 18개월 아기 스러졌는데… 푸틴은 여성 승무원들과 기념 촬영 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피범벅이 된 생후 18개월 남자아이 ‘키릴’이 한 남성의 품에 안겨 급하게 병원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역시 피투성이가 된 채 절망적인 표정을 한 키릴의 어머니가 뒤따르고 있다. 키릴은 결국 숨졌다. 담요 사이로 축 늘어진 키릴의 손이 보인다(위쪽 사진). 5일 러시아 국영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훈련센터를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여성 승무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마리우폴·모스크바=AP 뉴시스
“시민 대피 계획이 연기됐습니다. 즉각 대피소로 돌아가 주십시오!”
5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50분경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시 당국은 러시아와 합의했던 민간인 대피 계획이 취소됐다고 급박하게 알렸다. 이날까지 닷새째 물, 전기, 난방이 모두 끊긴 마리우폴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시민들로 가득한 거리는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 막심 씨(27)는 영국 BBC에 “미사일 폭격 소리가 들리고 연기가 솟아올랐다”며 “시 외곽에서 대피해 온 사람들이 곳곳에서 시신을 봤다고 했다. 이건 재앙”이라며 생지옥으로 변한 마리우폴 상황을 전했다. 4일에는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18개월 된 남자아이 키릴이 숨지는 비극이 벌어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 “마리우폴 거리에 시신 수천 구”
러시아는 마리우폴, 볼노바하 2개 도시에서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를 열기 위해 일시적으로 휴전하기로 3일 우크라이나와 약속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방부는 5일 두 곳에서 포격을 중지한다고 밝혔다. 두 도시는 친(親)러시아 세력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와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남부 크림반도를 잇는 요충지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5일 오전 일방적으로 두 곳에 대한 포격을 재개하면서 휴전 합의는 휴지조각이 됐다. 이날 마리우폴 곳곳에서 화염이 솟구쳤고, 탈출 경로로 설정된 자포리자행 고속도로에서도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도시를 포위하고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쳐 의약품은 물론 어린이를 위한 음식 수송까지 막고 있다. 도시 전체를 목 조르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규탄했다. 그는 “거리에 수천 구의 시신이 있다”며 “사망자를 수습할 길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시민 대피를 위해 50대의 버스를 마련했지만 러시아의 포격으로 20대만 남았다고도 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렉시 쿨레바 키이우주(州) 서기는 “수도 키이우 북부 보로s카는 물과 전기가 없이 완전히 파괴됐다”며 “환자 수백 명이 있던 지역 병원이 러시아군에 장악된 뒤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를 탈출하는 피란민들이 이용하는 이르핀강 다리를 폭격해 어머니와 10대 아들, 8세 딸 등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이 아이들을 대피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도 했다.
○ 러, 피란민에게도 발포… 성범죄 의혹도
러시아군이 장악한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 등에선 침공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선 가운데 러시아군이 시위대와 피란민에게까지 발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CNN은 러시아가 3일 피란민 2명을 향해 발포해 이 중 한 명이 숨졌으며 환자를 수송하는 앰뷸런스의 이동조차 막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2대 원전인 남부 미콜라이우 원전도 장악하려 하고 있으며, 키이우에서 약 160km 떨어진 카니우 수력발전소까지 노리고 있다고 전했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당시 우크라이나 대표단으로 러시아와 1차 휴전협상 때 배석했던 금융가 데니스 키레예프가 러시아 간첩으로 발각돼 우크라이나 보안국에 의해 총살당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