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폴란드 국경지역 르포
그 순간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역사의 유리창이 일제히 흔들리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러시아군이다” 하고 외치자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다. 엄마인 리샤첸코 씨는 18세 딸과 9세 아들의 손을 부여잡았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공포에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압사당할 수 있었다.
승강장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다시 열차 앞으로 몰려들었다. 탑승 공간이 부족해 아이가 있는 여성부터 우선 탑승할 수 있었다. 리샤첸코 씨는 딸에게 아들의 손을 쥐여 주며 말했다.
딸은 남동생을 데리고 열차에 올랐다. 포격 소리에 공황상태에 빠졌던 아들은 승강장에 홀로 남은 엄마를 보고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요!”
딸도 역무원을 붙들고 “우리 엄마가 없다”며 절규했다. 리샤첸코 씨는 자신을 향해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고도 인파에 밀려 기차에서 점점 멀어졌다.
피란열차, 러 포격 우려에 돌고돌아… 12시간 거리 25시간 걸려
정원의 4배 태워… 통로까지 빼곡
국경 넘는 버스선 밤새 5번 검문
우크라 집은 탈출한날 저녁 피격
러시아 포격에 폐허가 된 하르키우 중앙광장
리샤첸코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 아이들이 있는 기차를 향해 어떻게든 나아가야 했다. 그는 움직임에 방해가 될까 봐 손에 든 짐가방을 버리고 사투 끝에 가까스로 열차에 올랐다.
“얘들아, 엄마 왔어. 겁내지 마!”
기차에서 다시 만난 세 식구는 힘껏 얼싸안았다. 아이들을 껴안고 우는 모습에 승무원은 하차를 요구하지 않았다.
열차 내부는 붐비면서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4인 공간에 15명씩 끼어 앉았다. 기차는 폴란드 국경에서 약 80km 떨어진 서부 도시 르비우까지 약 1000km를 이동했다. 빽빽이 들어찬 승객들은 언제 포격을 당할지 몰라 숨죽였다. 키이우 주변을 통과할 때는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밤에는 기차 내부의 모든 불을 끄고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다. 여성들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복도에 앉아 잠을 잤다. 위험지역을 피해 돌아가느라 평소 12시간 걸리던 게 이때는 25시간이 걸렸다.
5차례의 검문을 받으며 밤새 달린 끝에 리샤첸코 가족이 탄 버스는 3일 오전 폴란드 동남부 국경을 넘었다. 리샤첸코는 버스에서 내린 뒤에야 1일 하르키우 집을 떠난 지 몇 시간 만에 집 주변이 포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날 러시아군의 공격은 우크라이나 침공 시작 후 처음 이뤄진 민간지역 포격이었다. 조급해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더 잔혹한 공격을 시작했다는 게 서방 언론의 설명이었다.
리샤첸코 가족은 피란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집에서 바나나 한 덩이와 생수를 챙겨 나왔지만 기차역에 가방을 버리면서 이마저 먹지 못했다. 폴란드 국경에서 기자에게 2시간 동안 목숨을 건 탈출기를 털어놓은 리샤첸코는 다음 행선지인 바르샤바로 떠나며 간곡히 부탁했다.
“더 이상 전쟁의 비극이 없도록 막아주세요.”
메디카=김윤종 특파원
메디카=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