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혁은 ‘작곡가 프로코피예프도 체스를 잘했다. 음악가에게 필요한 논리력과 지구력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한국의 열성 피아노 팬들에게 지난해 10월은 이혁(22)이라는 이름으로 뜨거웠다.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콩쿠르로 꼽히는 바르샤바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그는 500여 명 지원자 중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한국인 중 유일하게 진출해 ‘어게인 2015 조성진’의 기대를 높였다. 입상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연주한 쇼팽 협주곡 2번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12월에는 파리 아니마토 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 재학 중인 그가 1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모스크바를 떠나 고국에 온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열네 살 때 모스크바에 유학을 간 것은 러시아 작곡가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1부 연주곡 중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듬뿍 담긴 작품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인 페트루슈카는 이와 달리 활발하고 해학과 광기까지 담긴 곡이죠.”
―후반부엔 쇼팽의 ‘돈조반니 주제 변주곡’과 소나타 3번을 준비했습니다. 쇼팽콩쿠르에서 경험한 것과 관련되나요.
“지난해 쇼팽콩쿠르에서 연주한 작품들이죠. 이 대작곡가와 한층 가까워지는 기회였고, 청중들과 전세계에서 유튜브로 지켜본 음악팬들에게 제가 준비한 모든 걸 들려드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 경험을 고국 청중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마음이 복잡하겠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미승인 공화국 두 개를 승인했을 때 러시아의 제 친구들은 모두 ‘이것으로 끝일 거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전쟁이 나자 모두들 당황해했죠. 제가 나온 게 개전 첫날이었는데, 시위로 교통이 통제된다는 소식에 일찍 공항으로 나왔습니다. 고국에 와서도 러시아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물가와 환율이 뛰고 현금지급기에 돈이 남아있지 않다며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세계에 이런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