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 박지영-청인 이원준 한무대 연극 완성 과정 담은 ‘다큐 연극’ 일부 장면은 수어로만 진행해 농인의 ‘일상 어려움’에 공감 유도
12일 개막하는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에서 농인 배우 박지영(왼쪽)이 청인 배우 이원준에게 수어로 말을 거는 장면. 두 사람은 “농인과 청인이 서로의 상황을 인지하고 연기하는 과정에서 성공 혹은 실패하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했다. 국립극단 제공
배우 박지영(25)의 모국어는 한국 수어다. 농인(聾人·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그는 자연스레 손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열두 살에 처음 미국 이모 집에 놀러가서 우연히 농인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를 봤다. 그가 “농인도 배우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이모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이지. 여기선 농인 배우가 저 사람 말고도 많아.”
12일 막을 올리는 다큐멘터리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의 주인공 농인 배우 박지영의 이야기다. 그와 청인(聽人·청각장애가 없는 사람) 배우 이원준(35)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두 사람이 함께 연극을 완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1일 만난 두 사람은 “극중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방문한 이방인 같은 존재”라며 “농인과 청인이 무사히 같은 무대에 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연극인 만큼 두 배우는 가상의 배역이 아닌 실존인물로 무대에 선다. 약 80분간 여러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농·청인 배우가 함께 연극을 완성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실험극이다.
“저는 지영이 하는 수어를 보면서 연기하는 게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하지만 지영이는 계속 제 입이나 손동작을 보고 있어야 하잖아요. 저보다 훨씬 힘들었죠.”(이원준)
연극이 완성되기까지 두 사람은 좌절과 성취를 번갈아 맛보게 된다. 수어로만 연기하는 박지영은 특히 고전극의 왕 연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옛날 왕을 연기하는 장면에서 청인 배우는 왕의 어투와 어휘를 사용해 연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옛 왕이 어떤 수어를 썼을지 알 수 없잖아요. 뉘앙스를 전달하는 게 어려웠어요.”(박)
공연 중 한글 자막과 수어 통역이 함께 제공되지만 일부 장면은 수어로만 공연된다. 농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통의 어려움을 청인 관객들도 체험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다. 자막 없이 수어로만 펼쳐지는 무대가 낯설지는 않을까.
“저희 공연 주제이기도 한 지영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이)
12∼20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 전석 3만5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