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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서, 방치돼서…산불현장 ‘못’ 떠나는 동물들

입력 | 2022-03-08 06:07:00


#1. 경북 울진에 사는 A씨는 자신의 집으로 산불이 옮겨 붙자 눈물을 머금고 반려견 목줄을 풀어줬다. 관내 화재 대피소에는 ‘사람만’ 출입 가능하고, 동물은 데려갈 수 없어서다. 이후 B씨는 동물구조단체에 자신의 반려견 위치를 보내 구조를 요청했다.

#2. 울진에서 개농장을 운영하는 B씨 부부는 산불에 ‘재산’인 도사견 12마리가 불에 탔다. 이후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고, B씨 부부는 도사견 150마리를 방치하다가 동물 보호단체에 개들에 대한 소유권을 넘겼다.

8일 동물권단체 등에 따르면 경북 울진에서 시작된 대형산불 현장에 남겨진 야생동물·반려동물·농장동물 수백 마리가 죽거나 다칠 위험에 처해 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 지침상 이재민 대피소에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에서 동물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 및 제도가 없어 말 못 하는 동물들이 더욱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명은 건졌지만 유독한 연기를 마신 동물들의 피해는 대를 건너 기형 출산 등의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5일 울진군청으로부터 울진군 유기동물 보호센터에 있는 동물 약 90마리의 긴급 대피 거처를 얻어내는 등 이날까지 100마리 이상의 동물을 긴급구조했다고 전했다.

동물권단체 ‘케어’도 지난 4일 울진군 고성리의 한 개농장에서 화염 속에 방치된 도사견 150마리를 발견했다. 이들은 화상이 심한 개 6마리를 병원으로 이송했고, 남은 개들을 보호 및 관리하고 있다.

이들 단체와 함께 동물 구조 활동을 벌이는 ‘리버스’와 ‘라이프’는 지난 주말 80대 노인이 대피하면서 미처 풀어주지 못한 반려견 3마리를 구조했다.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치된 동물들의 위치를 시민들에게 제보받으면서다.

김용환 리버스 대표는 “말 못하는 동물들도 지켜야 할 소중한 생명”이라며 “구조한 3명의 강아지들은 저희가 치료한 후 견주분 집이 피해 복구되면 데려다 드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동물권단체들은 재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민간단체들이 동물의 구조부터 치료, 임시 보호까지 해결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카라 관계자는 “반려동물마저도 대피소에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지자체에서) 못 박고 있다”며 “대피소에 오느라고 개를 묶어놓고 왔다든지, 목줄을 풀어 어쩔 수 없이 유기했다는 이재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군청을 통해 구조한 동물의 거처를 찾기까지도 난항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는 “동물들 옆까지 불이 다가왔는데 관할 지자체는 동물을 옮길 켄넬(이동 장)도, 피난처도 마련하지 못했다”며 “겨우 확보한 동물들의 임시 거처도 실내가 아니라 옥외공간 한켠 주차장”이라고 토로했다.

동물권단체는 지자체가 재난 현장에 방치된 동물에 최소한의 구명 조치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반려동물은 견주와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야 하고, 그게 어렵다면 동물들만 따로 있는 대피소를 지정하면 된다”며 “실질적인 지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