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김연아 씨(33)는 요즘 ‘다른 일’에 더 바쁘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폴란드 국경을 넘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돕는 일이 사업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4일(현지 시간) 오후 화상으로 만난 연아 씨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하루 평균 피란민 10명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폴란드 친구들과 함께 국경으로 차를 몰고 가서 피란민을 태우고 폴란드 주요 도시로 옮겨주기도 해요.” 그의 도움을 받은 피란민은 지금까지 100가족이 넘는다.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자기 일처럼 돕는 이유는 연아 씨의 뿌리와 연관이 깊다. 그는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에서 태어난, 탈북민 2세다. 그의 아버지 김지일 씨(58)는 김일성종합대 수학부에서 우크라이나(당시 소련) 유학생로 선발되는 등 ‘북한의 천재’로 불렸다.
1991년 5월 27일 서울에서 재회한 김연아 씨(오른쪽) 가족. 아버지 김지일 씨(왼쪽)와 어머니 발렌티나 보주코 씨(가운데).
우크라이나와 한국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낸 연아 씨는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영사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2016년 폴란드로 이주해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다 2년 전 부동산업을 시작했다. 연아 씨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제대로 말씀을 못하실 정도”라며 “그동안 1년에 한 번은 하르키우에 갔지만 당분간은 가지 못할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메디카=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