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단독]누가 언제 찍었는지 모르는 투표지 공개 논란…선관위는 “문제없다”

입력 | 2022-03-08 14:11:00

연산4동 사전투표소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과정에서 누가 언제 촬영했는지 파악되지 않은 투표지가 외부에 공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법상 기투표된 투표지를 촬영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9일 본투표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거관리위원회가 지침을 시급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5일 연제구 연산4동 사전투표소에 발생한 기표된 투표지의 촬영 후 외부 공표 건에 절차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고 8일 밝혔다. 앞서 5일 새마을금고 건물에 마련된 연산4동 사전투표소를 찾은 확진·격리 유권자 6명은 새 투표용지가 아닌 이미 기표된 투표지를 받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등을 기표하는 곳에 빨간 인주가 찍혀 있었다. 이 투표지는 사진으로 촬영돼 외부로 퍼졌으며 기사로도 실렸다.

문제는 현형법상 이 같은 투표지 촬영이 위법이라는 점이다. 공직선거법 제166조 2(투표지 등의 촬영행위 금지)에 ‘누구든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해서는 안 되며, 투표관리관(사전투표관리관)은 선거인이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한 경우에 해당 선거인으로부터 촬영물을 회수한 뒤 투표록에 사유를 적어야 한다’고 명시됐다.

선관위는 투표지 촬영 지점이 법에 명시된 ‘기표소 안’이 아닌 것으로 추정돼 위법으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표소는 유권자의 비밀투표를 보장하기 위해 하얀색 칸막이가 쳐진 공간이다. 선관위는 “이날 사전투표에 나선 확진·격리 유권자가 건물 야외 주차장의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했으며, 사진이 찍힌 곳이 야외 기표소 내부가 아닌 것으로 보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와 더불어 사진으로 찍힌 투표지의 경우, 유권자가 직접 기표한 것이 아니란 점을 또 다른 근거로 댔다. 선거법 167조(투표의 비밀보장)에 ‘선거인은 자신이 기표한 투표지를 공개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고, 자신의 투표지를 촬영하지 않은 까닭에 법 위반이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바꿔 해석하면 타인이 기표한 투표지는 사진으로 담아도 문제 소지가 없다는 뜻이 된다.

연산4동 사전투표소

선관위는 사진으로 찍혀 공개된 투표지가 언제 어디서 누가 촬영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선관위는 “법 위반 행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선거법은 코로나19와 같은 팬더믹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제정된 것이어서 새로운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누군가 투표지에 문제가 있었단 점을 지적하려고 촬영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도 “이 경우에도 투표소를 관리하는 총괄 책임자에게 먼저 문제의 사실을 고지한 뒤 후속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현행법 위반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며 “감염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9일 본투표와 6월 지방선거를 남겨두고 있는 만큼 선관위가 부산경찰청 등에 수사를 의뢰해 사실 관계를 규명하고 같은 상황이 재발되지 않게 국민에게 안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관위에 투표 관리강화 지침 마련을 주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인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기표소 안팎의 촬영을 두고 과도하게 처벌 여부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유권자가 같은 문제로 부정시비에 휘말리지 않게 선관위의 관련 지침 정비가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