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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외무장관 “세계는 우리를 더 도울 수 있다”…WP 기고

입력 | 2022-03-08 21:25:00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세계는 우리가 러시아와 싸우는 것을 돕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다. 그는 과거 윈스턴 처칠이 “타협자는 악어가 자신을 가장 나중에 잡아먹길 바라며 악어에 머리를 주는 사람”이라고 빗댄 것을 활용해 “악어(히틀러)는 타협하는 자들을 하나씩 잡아먹었다. 히틀러의 야망을 중단시키기 위한 대가는 엄청났다”고 평했다. “우리는 80년 전에 했던 실수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한 쿨레바 장관은 세계인들에게 “21세기는 20세기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


수십 년 동안, 세계 지도자들은 유럽 전역의 전쟁 기념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엄숙하게 “절대 다신(Never again)” 전쟁은 안 된다고 선언해왔다. 지금은 바로 그 말들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때다. 러시아는 증오로 가득찬 팽창주의로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역사는 우리가 이 악에 어떻게 맞섰는지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심판할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과연 그 대가는 얼마일까?

지난 수십 년 간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한 비유는 워낙 남용돼 평가 절하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계속해 우리 시민들을 폭격하고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다. 그가 히틀러와 스탈린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이처럼 잔혹한 군사적 침략을 마지막으로 받았던 건 1941년 6월 22일 새벽, 히틀러가 소련을 상대로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을 때였다.

푸틴은 침공 전후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이들이 주권국가에서 존재할 권리에 대한 증오감을 숨기지 못했다. 러시아 시민들과 군인들은 수년 동안 우크라이나인들을 ‘신나치주의자’라고 부르는 선전에 중독 돼왔다.

침공 시작 이틀 만에 러시아 관영매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탈환’을 성급하게 선언했다. 이 매체는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특수작전’을 ‘우크라이나 문제의 해결’이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나중에 삭제됐지만 웹상에는 그 흔적이 계속 남아있다.

‘우크라이나 문제의 해결’이라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릴 것이다. 만약 이것이 역사가 스스로 반복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그러겠는가?

물론 악은 늘 서로 다른 상황에서 뿌리내렸다. 하지만 우리가 무력으로 국경을 다시 긋고 타협의 여지가 없는 국가 정체성과 자결권을 지우려는 러시아의 야만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히틀러의 득세와 침략은 초기 히틀러를 저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악어는 타협하는 자들을 하나씩 잡아먹었다. 그의 세계적 야망을 중단시키기 위한 대가는 엄청났다. 우리는 80년 전에 했던 실수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절대 다신(Never again)이란 말은 너무 늦기 전에 행동한다는 뜻이다. 침략자가 더 많은 죽음과 파괴를 일으키기 전에 이를 막는 다는 뜻이고 공포가 우리를 마비시키도록 놔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우리 군과 함께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들은 영웅적 행동, 극기, 회복력으로 이를 증명해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말했듯 우크라이나는 승리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푸틴의 기습 공격을 저지했고 침략자들에게 참담한 손실을 입히며 러시아가 전략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우리는 우리 땅을 계속해 지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러시아가 자국의 침략에 자금을 대는 것을 막기 위해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는 필요한 무기를 계속 지원받기 위한 헌신이 필요하고 러시아의 침략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 역시 재정적 지원을 필요할 것이다. 이후에는 국가 재건을 위한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연대를 보고 느끼고 있으며 이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 국민과 군대, 대통령에 대해 쏟아지는 존경은 우리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푸틴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단호하고 즉각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항공기, 효과적인 방공 및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는 러시아 항공기와 미사일이 더 많은 민간인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의 영공을 보호해야 한다.

제재 측면에서는 러시아 국영 스베르방크의 SWIFT(국제금융결제망) 접근이 금지돼야 한다. 또 각국은 우크라이나의 피로 얼룩진 러시아산 석유 구입을 중단해야 한다. 항구들은 러시아 선박의 입항을 금지해야 하고 미국, 스위스, 일본, 영국, 유럽연합도 러시아 금융 기관의 외화를 동결해야 한다.

러시아와 푸틴은 완전히 고립되어야 한다. 각국 러시아 대사와 국제기구 대표들은 모두 추방돼야 한다. 문화 및 스포츠 행사에 대한 보이콧 및 개최 금지 조치도 확대돼야 한다.

이미 이 중 일부가 실천에 옮겨졌다는 사실을 안다. 우크라이나의 전 세계 특사로서, 나는 특히 러시아 수도 거리에 나와 자국의 침략에 항의하며 러시아 정부를 규탄한 수백만 명의 시위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러시아를 막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 기다리거나 망설일 시간이 없다. 우리 인류 공동에 대한 집합적 시험을 통과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절대 다신(Never agian)“이라는 엄숙하지만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는 울부짖음과 외침이 돼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20세기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