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거주 김연아씨 구호 앞장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태어난 탈북민 2세 김연아 씨.김연아 씨 제공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 일이에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김연아 씨(33)는 요즘 ‘다른 일’로 더 바쁘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폴란드 국경을 넘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돕는 일이 사업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4일(현지 시간) 오후 화상으로 만난 김 씨는 “(지난달 24일 이후) 하루 평균 피란민 10명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란민의 임시 정착을 돕는 코디네이터로 일한다. 러시아어 폴란드어에 우크라이나어까지 하는 김 씨는 국경에 도착한 피란민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며 이들이 원하는 숙소, 거주지역, 교통편 등 각종 정보를 세심히 알려준다.
자기 일처럼 피란민을 돕는 이유는 연아 씨의 뿌리와 연관이 깊다. 그는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에서 태어난 탈북민 2세다. 그의 아버지 김지일 씨(58)는 ‘북한의 천재’로 불렸다. 지일 씨는 김일성종합대 수학부를 졸업하고 1989년 우크라이나(당시 소련) 유학생으로 선발돼 하르키우대 수학물리학과를 다녔다. 이때 러시아어 전공 여학생 발렌티나 보즈코 씨(57·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곧 약혼하고 연아 씨를 낳았다.
1990년 북한에서 해외 유학생 귀국 명령이 떨어지자 지일 씨는 한국으로 귀순했다. 북한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딸을 영영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소련이 붕괴되고 가족은 서울에서 재회했다. 지일 씨는 선경(현 SK)에서 일하다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을 설립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낸 연아 씨는 영국 임피리얼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영사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2016년 폴란드로 이주해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다 2년 전 부동산업을 시작했다. 연아 씨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제대로 말씀을 못 하실 정도”라며 “그동안 1년에 한 번은 하르키우에 갔지만 당분간은 가지 못할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이번 일로 다른 국가와 관계가 강화되겠지만 러시아는 더 외면받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승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아 씨는 “당분간 계속 피란민을 돕겠다”며 “이들 모두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