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신조어 ‘썸타기’ ‘어장관리’ 분석한 최성호 철학과 교수 인터뷰 취업-결혼등 미래 불확실성 늘며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 못 하는 것 ‘썸’ 목적따라 탐색-쾌락형 갈려… 어장관리는 상대 기만하는 행위 젊은세대의 연애문화 탐구는 한국사회 현주소 분석하는 작업
가수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노래 ‘썸’ 뮤직비디오에선 썸타기를 하는 남녀의 심리가 실감나게 드러난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20대 남성 준수는 동갑내기 여성 지윤과 로맨스 영화를 보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 만나지 않는 날에도 휴대전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준수는 지윤에게 사귀자고 고백하진 않는다. 자신이 지윤에게 끌리는 게 외로워서인지, 사랑해서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준수는 지윤과 친구보다는 가깝지만 연인까지 이어지지 않는 이른바 ‘썸타기’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왜 준수는 썸만 타는 청년이 된 걸까.
최성호 교수(왼쪽)는 웹툰 ‘알고 있지만’ 등 여러 콘텐츠를 통해 MZ세대의 썸타기 문화를 분석한다. 네이버웹툰 제공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떠보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썸타기는 자기 마음을 결정짓지 못하는 상태인 ‘의지적 불확정성’과 관련 있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 못 하는 거죠.”
최 교수는 남녀가 연애하기 전 상대방과 심리전을 벌이며 밀고 당기는 이른바 ‘밀당’과 썸타기는 다르다고 했다. 밀당은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행위인 만큼 그 중심이 상대방에게 있다. 반면 썸타기는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라 자신이 탐구 대상이라는 것. 최 교수는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썸타기는 ‘자기지향적인 활동’에 해당한다”며 “썸타기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받아들일지 배제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한다”고 했다.
MZ세대가 연애를 시작하며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하는 건 공적인 관계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의무와 제약이 부과되는 관계를 받아들이는 말이라는 것. 최 교수는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의 개별적인 믿음을 넘어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공적인 담화의 역할을 한다”며 “다른 이성과 사귀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도 생기는 발화”라고 했다.
최 교수는 상대방과 사귈 것처럼 행동하며 여러 이성을 동시에 만나는 ‘어장관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마음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 최 교수는 “어장관리자는 호감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부재중 전화를 남기는 ‘떡밥’을 던지며 상대의 마음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며 “상대를 속임으로써 마음을 통제하는 행태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라고 했다.
지난해 1학기엔 대학원 철학과 학생들과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해 수업했다. 신조어를 통해 철학적인 탐구를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진지하게 답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