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태’ 韓 기업들 피해 속출
러시아에 연간 약 23만 대의 완성차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현대자동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당초 9일부터 재가동할 계획이었지만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로 항공 및 해운길이 막히면서 부품 공급이 어려워져 재가동 계획을 취소하고 무기한 중단 상태에 들어섰다.
○ 현대차 “현지 공장 무기한 중단”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에 대한 세계 각국 정부 및 기업들의 제재 참여가 확대되고 러시아 정부도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현지 진출 한국 기업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건설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사업을 추진 중인 국내 건설사는 총 9곳, 사업 건수는 12건이다. 러시아에서 공사를 하는 한 대형 건설사는 “향후 대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최악의 경우 공사 중단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 진출한 식품기업도 사태 장기화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초코파이 인기가 높아지자 현지 생산 라인을 증설한 오리온과 롯데제과는 밀과 설탕 등 원·부자재 비축분을 늘리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원재료 수개월 분량을 비축하고 있어 당장 영향은 없지만 사태 장기화를 대비해 원료 공급처와 자금 확보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컵라면 시장 점유율 1위인 팔도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밀가루 식품 가공업체 관계자는 “사태 장기화로 소맥(밀가루 원료) 등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면 관련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대금 결제 못 받고, 선적 물품은 바다 위에 멈춰
무역협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피해 집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55.3%)은 대금 결제 문제다. 결제 지연은 물론이고 러시아 은행에 대한 금융 제재로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하거나 사업비 집행을 못 해 진행 중이던 작업이 중단되는 것 등이다. 러시아가 비우호국가에 대해 외환 채무를 자국 통화인 루블화로 상환하겠다고 나서면서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무역협회 측은 “특히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기업들과 현금 유동성이 중요한 기업들의 타격이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출대금을 받지도 못하는데 계약에 따른 공급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곳도 있다. 벨라루스 국영 버스업체와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한 한 업체는 대금 일부를 중국 위안화로 송금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벨라루스도 국제사회 제재를 받고 있어 벨라루스발 위안화 입금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계약에 따른 추가 부품 공급을 안 할 수도 없다. 벨라루스 업체가 “계약 미이행 시 추후 공급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류 차질 피해도 늘고 있다. 필요한 부품이나 수출 서류 등이 제때 도착하지 못해 사업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에서 러시아로 물건을 선적했던 한 업체는 러시아로 가던 선박이 봉쇄되면서 제품이 바다 위에 멈춰 있는 상황에 몰렸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수출대금 송금 지연은 물론이고 결제와 관련해 아예 러시아 현지와 연락도 안 된다고 호소하는 기업이 많다”며 ”피해 기업에 대한 신규 대출, 세제 지원, 물류 지원 등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