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도 막지 못한 선거 열기다. 코로나 이후 첫 선거였던 2020년 총선 투표율은 66.2%로 28년 만에 최고치였다. 지난해 4·7재·보궐선거는 평일임에도 서울과 부산의 투표율이 광역단체장 재·보선으로는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코로나가 최악으로 치닫는 시기에 치러진 이번 20대 대선도 77.1%로 2000년 이후 실시된 대선 중 역대 2위를 기록했다. 1위인 2017년 대선(77.2%)과는 0.1%포인트 차다. 총 투표자 수는 역대 최대인 3400만 명. 만 18세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직접선거로 치러진 대선은 1952년 2대부터 올해 대선까지 모두 14회. 이 중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대선은 6·25전쟁 이후 실시된 1956년 선거다. 정전협정에 따라 한국에 편입된 경기 연천군과 강원 철원군 등 수복지구 주민을 포함해 총 유권자의 94.4%가 참여했다. 2위는 유신 이후 첫 직선제로 치러진 1987년 대선으로 89.2%였다.
▷이후 대선 투표율은 하향세를 그리며 2007년에는 6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당시엔 이명박-정동영 후보의 본선 대결보다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당내 경선이 관심사였다. 민주화 이후 지난번 대선까지 7번의 대선에서 득표율 1위는 박근혜 전 대통령(51.55%)으로 유일하게 절반을 넘겼다. 2위는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48.91%)이었다. 1, 2위 간 표차가 가장 적었던 승부는 1997년 김대중-이회창 후보 대결로 39만557표 차였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참여 열기가 뜨거웠던 배경엔 세대와 이념에 따른 심각한 분열상이 있다. 투표율이 반등한 시기도 진영 간 대결이 본격화했던 2012년 대선이다. 2020년 총선은 ‘친조국’과 ‘반조국’으로 갈라져 치렀다. ‘이러다간 나라 망한다’는 절박감이 투표율을 끌어올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기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자 2020년 대선 투표율이 66.8%로 최고 기록을 세운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875년 프랑스는 단 1표 차로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표의 힘을 믿는 유권자들의 통합과 진보를 염원하는 간절함이 역대급 투표율에 담겨 있을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