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展서 판화 체험해보니 마티스가 주로 썼던 석판화 기법, 복잡한 문양도 드로잉처럼 표현 잘 몰랐던 ‘판화의 신세계’에 감탄, 종이 오리기 기법으로 만든 ‘재즈’ 작가 특유의 순수함-정열 담아내
‘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 전시장 내 판화 공방에서 워크숍 수강생이 금속판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8일 오후 ‘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 전시가 한창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실 후반부 부근에 마련된 작은 공방에 관람객이 삼삼오오 모였다. 이 전시의 판화 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판화 전문 공방인 ‘디비판화작업실’의 강사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간대별로 실크스크린, 석판화, 리소그래프 수업을 진행했다.
‘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 전시에서 아트북 ‘재즈’에 수록된 ‘운명’(1947년).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기자가 참석한 시간은 석판화 수업. ‘물과 기름의 반발력을 이용한 기법’이라는 모호한 석판화 개념이 수업 2시간 만에 단박에 이해됐다. 아연이나 알루미늄 금속판 위에 크레용처럼 기름 성분이 많은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첫 작업이 시작됐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참가자들 사이에선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말이 나왔다. 금속판 위에 파우더와 고무액을 발라 유성 재료를 번지지 않게 하고, 그림이 없는 여백은 부식시켜 친수성으로 바꿔줬다. 5분 정도 기다린 뒤 금속판에 묻은 물을 말리고 프레스기에 찍어냈다. 그럴싸한 ‘석판화’ 작품이 완성됐다.
석회석 돌판에 그림을 그리고, 부식되길 하루 이상 기다리는 과정을 압축했을 뿐, 앙리 마티스(1869∼1954)가 실제 활용한 석판화 기법과 흡사하다. 석판화는 마티스가 가장 많이 사용한 판화 기법이며, 마티스는 자신의 스튜디오에 석판화 프레스기를 놓고 자신과 주변인들을 그리곤 했다. 전시는 그가 사용한 6가지 판화 기법에 따라 작품을 나열했다. 관람객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작품이 석판화다. ‘거울에 비친 댄서’(1927년) ‘하얀 여우’(1929년)에서 보듯 드로잉이라 착각할 정도로 미세한 선과 다른 판화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음영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한이준 씨(26)는 “수업에 참여한 뒤 마티스의 작품을 보니 석판화 파트에서 자화상이나 실내 풍경을 담은 작품들 속의 디테일한 문양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수업에 참가하려면 전시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고 참가비 7만 원을 내면 된다.
칼을 던지는 사람’(1947년). 밝은 색상의 종이를 오려 만들어 생동감이 넘친다.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석판화 파트 외에도 관람객들이 주로 머무는 곳은 동판화의 부식을 통해 색의 농담을 표현하는 애쿼틴트와 컬러 석판화 파트다. 특히 포스터나 엽서로 제작돼 판매되는 ‘뾰족한 턱을 한 나디아’(1948년), ‘라지 마스크’(1948년)는 2030세대에게 익숙하다. 관람객 김미지 씨(21)는 “마티스의 작품을 엽서로 먼저 접했다”며 “원화 작품이 궁금했는데 만들어진 지 7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매우 감각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마티스가 종이 오리기 기법으로 만든 20편의 컷아웃 작품이 수록된 아트북 ‘재즈’(1947년) 원본도 공개됐다. 서커스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들을 단순하게 패턴화한 작품들로, 말년까지 작가가 지닌 순수함과 정열을 표현했다. 재즈는 현대에 들어서도 아트북 디자인, 일러스트,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에 폭넓게 영향을 끼쳤다.
석판화 ‘거울에 비친 댄서’(1927년)는 댄서의 그림자까지 세밀하게 표현돼 회화와 비슷해 보인다.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
마티스는 강렬한 원색을 쓰는 것으로 잘 알려진 작가지만, 말기 판화 작품은 선의 활용 면에서 혁신적이었다. 이혜진 디비판화작업실 강사는 “판화는 ‘그냥 찍어내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판화도 작가가 직접 그리고 만지는 창작 과정을 똑같이 거친다. 정해진 수량의 판화 원본도 실재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결코 낮지 않다”고 말했다. 4월 10일까지. 1만3000∼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