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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러軍 엄마들 “다 속았다, 훈련간 우리 애가 왜 우크라에 있나”

입력 | 2022-03-10 03:00:00

군인 가족들, 러 정부가 함구하자 우크라에 아들-남편 생사확인 요청
7일까지 핫라인 문의 6000통 빗발
푸틴, 비판여론에 “가족들 걱정 이해”…美 “러軍 사망자 2000~4000명 추산”



포로된 아들 영상보고 충격에 빠진 母 러시아 여성인 류드밀라 부한초바 씨(왼쪽)는 지난달 “훈련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아들이 우크라이나에 파병돼 포로로 잡힌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고 충격에 빠졌다. 러시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한 영상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그의 아들(오른쪽)이 고개를 떨군 채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자유유럽방송(RFE) 영상 캡처


러시아인인 류드밀라 부한초바 씨는 지난달 말 지인이 보내 준 영상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지인은 소셜미디어에서 퍼지고 있는 영상이라면서 “영상 속 아이가 네 아들 아니냐”라고 물었다. 영상 속에는 며칠 전 “훈련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던 부한초바 씨의 20대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우크라이나에 파병됐다가 포로가 돼 있었다. 군복 차림의 아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멍하니 땅을 보고 있었다. 부한초바 씨는 “아들이 우크라이나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곧바로 국방부에 수소문해 아들의 지휘관과 연락이 닿았지만 지휘관은 “처리 중”이란 답변을 반복했다. TV를 봐도 러시아 관영 언론은 ‘특수 군사작전’이라는 표현을 쓰며 정부 선전만 전달해 우크라이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부한초바 씨는 “아들에겐 어린애가 있다. 신에게 ‘나를 데려가고 아들은 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 러軍 가족들, 우크라이나에 전화해 생사 확인
최근 우크라이나 내무부가 러시아군 가족들을 위해 개설한 ‘포로·사상자 정보’ 핫라인에는 아들,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러시아인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7일까지 6000통 넘는 문의가 쏟아졌다. 러시아는 3일 ‘498명 사망, 1597명 부상’이라고 한 차례 언급했을 뿐 자군 피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8일 CNN이 공개한 핫라인 통화 녹음에는 러시아 병사들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가족들과 연락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족들은 아들이나 남편이 지난달 22, 23일경 예비군 훈련이나 군사훈련에 간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고 했다.

한 여성은 “(전쟁터에 있는) 아빠가 ‘어린 장병들이 총알받이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이걸로 돈을 벌고 세계의 왕이 되려는 한 사람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흐느꼈다. CNN은 “이 전화들은 러시아의 전쟁이 아닌 푸틴의 전쟁임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 러 병사 어머니 “우린 다 속았다”
“우린 다 속았다! 훈련이라고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총알받이로 가 있다. 왜 아이들이 그곳(우크라이나)에 보내졌는가!”

7일 시베리아의 한 체육관에서 러시아 병사의 어머니는 세르게이 치빌료프 케메로보 주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분노를 드러냈다.

“이제 막 스무 살이고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애들이다. 당신 아들은 어디 있는가?”(여성)

“대학에서 공부한다.”(주지사)

“대학에서 공부? 정부가 말하는 게 틀렸다는 거다. 이건 적대행위다!”(여성)

“이건 특수 작전이고 지금은 누구도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장병들이 사용된 건(They were used)….”(주지사)

“우리 애들이 사용됐다고?”(여성)

“(분위기를 수습하려 하며) 때가 되면 (작전은) 매우 빨리 끝날 것이다.”(주지사)

“다 죽어야 끝나겠지.”(여성)

이 격앙된 대화 장면이 담긴 영상이 러시아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며 “미숙한 군인들을 전장에 보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8일 TV 연설에 나서 “전투 중인 장병들의 어머니, 부인, 남매, 여자 친구들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면서 “온 나라가 그렇듯 여러분도 우리 장병들을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했다.

이날 스콧 베리어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이번 침공에 따른 러시아군의 사망자가 2000∼4000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