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 Change]〈5〉 이훈 ‘에바’ 대표 충전시설, 면적 많이 차지해 기피 자율주행 충전로봇 아이디어로 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 뽑혀 독립뒤엔 ‘수동 이동형 충전기’ 개발… ‘스마트 충전기’로 CES 혁신상도
이훈 에바 대표가 자사 첫 개발 제품인 자율주행 충전로봇(왼쪽) 옆에서 ‘CES 2022’ 혁신상을 수상한 ‘전력공유형 스마트 충전기’의 플러그를 든 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성남=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016년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전기차를 이용하는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었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 관련 안건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의에서 번번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고정식 충전기는 일정 주차 면적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데, 소수의 전기차 사용자를 위해 충전기를 설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 부결의 이유였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던 이훈 삼성전자 부장(당시 40세)도 걱정이 커져갔다. 온라인으로 테슬라 모델 3의 구매예약 신청을 해뒀는데,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기가 없으면 사용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전기차 충전 문제 ‘커다란 보조 배터리’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그때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상상을 시작했다. 주차면을 점유하지 않는 충전기는 어떤 모습일까. 그러다 떠올린 게 휴대전화 보조배터리였다. ‘큰 보조배터리가 주차장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은 ‘바퀴를 달고 자율주행기술도 탑재한 충전기가 전기차를 찾아다니며 충전해 준다면 공공주차장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지 않을까’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2년 후 그가 전기차 충전 스타트업 ‘에바’를 차리게 된 계기다.
이 대표를 포함해 제품 개발에 함께한 멤버 모두 충전이나 자율주행 관련 업무를 맡아본 적은 없었지만 오픈돼 있는 기술 등을 참고하며 만들다 보니 아이디어는 실제로 제품으로 이어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2018년 ‘삼성전자 C랩 인사이드’ 출신 스핀오프(spin-off·분사 창업) 35호 기업으로 독립했고, 그는 월급쟁이 부장에서 한 회사의 ‘대표’로 변신했다.
자율주행 규제, ‘수동형’으로 해결 모색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첫 번째 장애물에 부딪혔다. 자율주행 자동차나 로봇이 상용화되려면 교통법규, 보험체계, 교통표지판 등 법 제도뿐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인프라까지 바뀌어야 했다.
그는 “당시에도 자율주행 충전로봇을 당장 상용화하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규제만 풀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바뀌어야 하는 게 굉장히 많다는 걸 삼성전자를 퇴사한 후에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스핀오프 후 3개월 만에 사업 방향을 틀었다. 충전기에서 자율주행 요소를 제외시키는 대신 사람들이 직접 끌 수 있는 쇼핑카트 형식의 ‘수동 이동형’ 충전기를 만들었다. 700kg에 달하는 충전기를 누구나 쉽게 밀 수 있도록 손잡이에 사람의 힘을 감지하는 센서를 달고, 이에 맞게 모터가 구동하도록 하는 근력증강 이동 보조기술을 적용했다.
안전 규제, 끈질긴 설득으로 돌파구
두 번째 장애물은 안전 규제였다. 수동 이동형 충전기를 상용화하려면 전기사업법상 전력재판매 관련 규제가 해소돼야 했다. 이 대표는 규제자유특구사업 신청에 나섰지만 정부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가 계속 발생하면서 ‘가만히 있는 ESS도 불이 나는데, 이동하는 카트는 더 불안한 것 아니냐’는 인식 때문이었다.
“충전 불편함 없애 탄소중립에 기여할 것”
에바의 모토는 ‘충전 걱정 없는 전기차 라이프’다. 지난해 중순 선보인 ‘전력 공유형 스마트 충전기’는 올해 초 CES 2022 혁신상을 받았다. 이 대표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 글로벌 의제로 떠오르면서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전의 불편함이 해소되면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전기차를 타고, 이는 곧 탄소중립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가에게 규제라는 것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어떻게 풀지, 안 풀리면 얼마나 버틸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대기업 후배들에게: 대기업에 다니는 게 창업보다 더 많은 도전과 난관, 기회가 있을 수 있다. 이분법으로 보지 말고 자기 인생 가치에 따라 판단해야.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