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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을 기다리며[이준식의 한시 한 수]〈151〉

입력 | 2022-03-11 03:00:00


새해 들어 여지껏 향긋한 꽃 없었는데, 2월 되자 놀랍게도 풀싹이 눈에 든다.

백설은 더딘 봄빛이 못마땅했던지, 짐짓 꽃잎인 척 정원수 사이로 흩날린다.

(新年都未有芳華, 二月初驚見草芽. 白雪却嫌春色晩, 故穿庭樹作飛花.)

―‘봄눈(춘설·春雪)’ 한유(韓愈·768∼824)



봄을 기다리는 간절한 설렘을 담은 노래. 입춘 무렵이면 천지에 어름어름 봄기운이 스미지만 꽃향기를 맡기엔 이르다. 2월에 접어들자 여린 풀싹이 반갑게 시인의 눈에 들어온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풀싹이라면 봄의 전령으로 손색없으니 긴 겨울을 버텨온 이들에겐 뜻밖의 기쁨일 수밖에. 한데 봄의 더딘 발걸음이 불만스럽기는 백설도 마찬가지여서, ‘짐짓 꽃잎인 척’ 나뭇가지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봄을 재촉하고 있다. 시인의 마음속엔 벌써 풀풀 봄꽃이 흩날리고 있다.

눈과 꽃은 자주 서로의 비유물로 동원된다. 송이라는 단위로 같이 묶이는 것도 재밌는 인연이다. ‘하루 밤새 홀연 봄바람이라도 분 듯/나무란 나무마다 배꽃이 만발했네’(잠삼·岑參)라거나 ‘허공에서 피고 진다/바람에 부서지는/하얀 잎/봄날 가장 먼저 지는 꽃’(임재건, ‘봄눈’) 등의 시구가 눈길을 끄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고 보면 흩날리는 눈발을 꽃잎에 비유한 게 기발할 것도 없다. 기험시파(奇險詩派)란 별칭으로 불린 한유 특유의 시풍에 비하면 이 비유는 그저 밋밋하기만 하다. 짙은 서정성이나 평이한 표현 역시 당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기이한 발상이나 벽자(僻字), 난삽한 표현을 즐겨 씀으로써 당시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던 그의 다른 시들과는 딴판이다. 당송 산문의 비조(鼻祖) 한유에게는 역시 ‘두시한필(杜詩韓筆·시는 두보, 문장은 한유)’이란 영예가 제격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