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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이 ‘육지’에서 자주 소환되는 이유[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59〉

입력 | 2022-03-11 03:00:00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모 일간지에 “오늘은 대한민국호의 선장을 뽑는 날이다”라는 칼럼이 나왔다. 정치인들과 우리 언론은 유독 선장을 잘 찾는다. “위기에 처한 A단체, B를 선장으로”라는 말도 많이 사용된다. 왜 이렇게 바다의 선장을 육지에서 소환하는가? 리더십의 상징으로서 위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선장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현된 경우에 우리 국민은 환호했다. 아덴만에 해적을 만났을 때 살신성인의 자세로 선박과 선원을 구한 석해균 선장은 국민적 영웅이 됐다. 반면 세월호와 여객선 코스타 콩코디아호에서 여객을 배에 두고 도망간 선장들은 지탄을 받았다.

선장 하면 책임감이다. 수천억 원 가치의 선박과 화물을 책임지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해야 한다. 수천 명 여객의 목숨이 그에게 달려 있다. 선장이 어떻게 판단을 내리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선장이 되기 위하여 해양대에 입학하자마자 “자네들은 바다의 매골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바다의 매골(埋骨)? 바다에서 뼈를 묻는다는 말이다. 바다에서 죽기를 각오한다는 것이다. 마젤란, 캡틴 쿠크 등과 같은 선배 선장들이 큰 업적을 이루고 항해 중 혹은 이국땅에서 죽었다. 타이태닉호의 선장도 그러했다고 배웠다. 모두 선장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인 강한 책임감을 강조한 것이다. 독일 상법은 선박이 침몰하더라도 선장에게 등기말소 등의 후속처리 업무를 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 무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선장은 강한 통솔력을 필요로 한다. 선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선박은 팀워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선장은 자애로운 부모처럼 선원들을 돌봐야 한다. 항해 중 축제의 장도 가끔 마련해 선원들에게 즐거움도 선사해야 한다. 선장의 통솔력은 사심 없고 공정하고 희생적인 자세에서 나온다. 금주령을 내려놓고 혼자 술을 마신다면 존경받지 못한다.

일본 전국시대 최고 지도자가 후계자에게 남긴 말이다. “항상 물이 새는 배 위에 있다고 생각하라.” 물이 새는 배는 침몰 직전 위기 순간이다. 배 안으로 스며드는 물을 퍼내야 한다. 선장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그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물을 퍼내도록 지휘하고 격려해야 한다. 또 선장은 물이 새는 구멍을 막을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웃에 구조요청도 해야 한다. 최후에는 배에 타고 있는 선원과 여객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대책도 필요하다.

선장은 항해를 성공하기 위한 실력도 갖춰야 한다. 목적지까지 항해할 항로를 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철저히 출항 준비를 해야 한다. 태평양을 항해할 때 침로가 1도만 차이가 나도, 15일의 항해 후 도착 지점은 미국 남서부가 아니라 멕시코가 돼버린다. 중간 중간에 별을 보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침로에 대한 미세 조정을 해야 한다. 마주치는 선박과 충돌을 피하는 항해술을 갖춰야 한다. 선장이 갖춰야 하는 이런 자세와 실력은 선박뿐만 아니라 단체, 조직, 국가 모두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위기 시에 리더십의 상징인 선장이 육지에서도 자주 소환되는 모양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