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불이 넘어오면 대원들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죠, 하지만 보호수가 많고 아름다운 금강송을 꼭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이 앞섰습니다.”
9일 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해발 900m 안일왕산 정상에 있는 대왕소나무 앞. 남부지방산림청 소속 권호갑 특수진화대원(47)의 눈에 건너편 산 능선으로 넘어오는 거대한 화선(火線·불길의 둘레)이 들어왔다. 화선은 능선을 따라 금강송 군락지와 300m 떨어진 곳까지 번졌고 군락지를 집어 삼킬 기세였다.
산 위로 불어 닥친 바람은 태풍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거셌다. 권 대원은 “낮에는 바람이 화선의 반대방향으로 불고 있었는데 새벽에는 소나무 쪽으로도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었다”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바람의 방향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산 정상에 있는 500년 넘은 대왕소나무까지 위험해 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권 대원은 부랴부랴 물호스를 끌어 대왕소나무 근처에 뿌렸다. 물호스는 산 아래 1.5㎞ 떨어진 곳에서부터 끌어왔다.
대왕소나무까지 경사가 높은 임도 8km 길을 오른 터라, 불길이 넘어오더라도 빠져나오기 어렵고 대원들의 생명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24시간동안 대원들끼리 위치를 바꿔가며 소나무 앞뒤를 사수하고 물을 수시로 공급해줘야 해 밤을 꼬박 지새웠다. 추위에 지친 대원들은 서로에게 “한 시도 눈길을 돌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불을 살피자”며 힘을 북돋웠다.
권 대원과 같은 팀인 강민성 대원(34)도 민가 인근에서 주민들의 축사와 집을 지키다가 7일부터 금강송 군락지에 투입되면서 밤을 지새웠다. 강 대원은 “산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 한다”며 “국내 최대 규모의 금강송 군락지를 안전하게 지켜냈다는 데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산불이 7일째 이어졌던 10일 오후에도 특수진화대원들은 금강송 군락지에서 불길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헬기는 저수지에서 퍼온 물을 끊임없이 뿌려댔다.
경북 울진소방서 30년차 최모 소방경(55)은 “아무리 육체적으로 피로가 쌓여도 정신적으로는 우리나라의 핵심인 금강송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 뿐”이라고 했다. 그는 차량에서 쪽잠을 청하면서 불이난 첫날부터 금강송 군락지를 지키고 있었다. 최 소방경은 “10일 오전에도 순찰을 돌며 큰 화염과 화세가 보여 바로 헬기를 투입시켰다”며 “산 쪽에 수작업하기 위해 올라가다보면 무릎과 발목을 다치는 대원들이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울진을 찾아 트럭에 실린 물탱크로 불을 끄고 낙엽을 긁어내며 돕는 시민들도 있었다. 시민 배대윤 씨(19)는 인력이 부족한 급박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6일 경북 영주시에서 달려왔다. 배 씨는 “군락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불길이 넘어가는 걸 막아야 하고, 대왕소나무도 있는 중요한 곳이다 보니 꼭 함께 지키고 싶다”며 “나무나 갈퀴에 베이기도 하고, 4일 째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지만 완진까지 꼭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9일부터 10일 오전까지 금강송 군락지 300m 앞까지 불씨가 오는 등 급박한 상황이 이어진 이후 해당 지역의 집중 진화계획을 밝혔던 최병암 산림청장은 11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금강송 군락지 방어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날부터는 불씨가 재발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특전사 등 총 860명이 금강송 군락지에 투입돼 잔불을 정리하며 금강송 군락지 핵심 구역을 보호하고 있다.
울진=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