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부정선거로 이미 제재 대상 정치권서 명분 없는 제재완화 두고 비판 거세 사우디아라비아, 미 정보당국 왕세자 카슈끄지 살해 개입 증거 확인 9·11 테러 사우디 배후 진상규명 요구하는 유가족 반발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면서 그간 반인권적 행태를 규탄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를 원유 수입 대체지로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고립시키기 위해 이들 국가의 권위주의 지도자를 돕는 모양새가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2019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부정선거를 강하게 규탄하며 대사관을 철수하고 정권의 돈줄인 석유산업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 제재를 가한 나라다. 마두로 대통령은 현재 마약 밀매 혐의로 미국 사법당국에 기소된 상태이기도 하다. 백악관은 최근까지도 베네수엘라의 인권 상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그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과 관련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개입 정황을 비롯한 인권 유린 혐의에 대해 고강도로 비판해온 나라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9년 대선 유세 때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대가를 치르게 하자. 이들을 외톨이로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 국가정보국(DNI)은 지난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를 승인했다고 평가한 보고서도 공개했다.
반발도 거세다. 로브터 메넨데즈 민주당 상원의원(뉴저지)은 7일 성명을 내고 베네수엘라와 원유 교역을 재개하는 것은 “전 세대를 걸쳐 악화된 이 지역 인도주의적 위기를 고착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마두로를 “우리 반구의 암덩이”로 부르며 “고문과 살인의 마두로 정권에 생명력을 소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플로리다)도 트위터로 “백악관이 미미한 양의 석유 때문에 베네수엘라에 자유를 찾는 이들을 저버리려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미국 대표단은 조만간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원유 증산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9·11 테러 피해 유가족 단체의 회장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러한 움직임을 규탄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국 온라인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테리 스트라다 ‘911 가족 연합’ 회장은 10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겠다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9·11테러 피해 유가족 3000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유족들은 9·11 테러 비행기 납치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자로 밝혀지면서 테러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적 개입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을 밝혀달라고 호소해왔다.
스트라다 회장은 “우리 역시 기름값 인상에 따른 고통을 미국인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양국(미국-사우디아라비아)간 중요한 이슈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어떠한 대화에 나서든 유가족들이 요구해온 정의와 책임에 대한 논의가 포함돼야한다”며 “2001년 9·11 테러 공격에 대한 화해 없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회복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