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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kg 호스 메고 산비탈 올라… 일주일 쪽잠자며 금강송 사수”

입력 | 2022-03-12 03:00:00

산불 8일째, 금강송 지키는 대원들



9일 오후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안일왕산 정상에서 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원들이 대왕소나무에 물을 뿌리고 있다. 대원들이 24시간 근무를 하며 불길을 막아 금강송 군락지 방어에 성공했다. 산림청 특수진화대원 제공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안일왕산(해발 900m). 9일 밤 권호갑 대원(47·남부지방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은 동료 2명과 함께 건너편 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은 금강송 군락지와 불과 300m 떨어진 거리까지 치닫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서 시뻘건 불길이 몇 번이나 방향을 바꿨고 불이 타오르며 짙은 연기를 쉴 새 없이 뿜어냈다.

권 대원과 동료들의 임무는 산 정상에 있는 500년 된 대왕소나무를 사수하는 것. 권 대원은 “불길이 산을 넘어오기라도 하면 수만 그루의 금강송이 시커먼 재가 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소광리 일대는 200년 된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있는 국내에서 가장 큰 군락지다. 이곳에서 자란 금강송은 줄기가 곧고 재질이 우수해 예전부터 궁궐이나 문화재 복원에 사용됐다. 2008년 불에 탄 숭례문도 소광리에서 난 금강송으로 다시 지어졌다.

권 대원과 동료들은 행여나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나무에 불씨라도 튀지 않을까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나무에 물을 뿌리고 주변을 살폈다. 며칠 전 진화차량에서 1.2km 떨어진 산 정상까지 물을 끌어오고자 20kg 호스 여러개를 연결하며 산비탈을 걸어 올라왔다. 이들은 다음 날 오전까지 24시간 일하고 다른 팀과 맞교대한다. 강민성 대원(34)은 “밤에 추위 때문에 힘들었지만 서로서로 힘을 북돋우고 격려하며 이겨냈다”고 말했다.

권 대원과 동료들처럼 이곳에 모인 진화대원들은 금강송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10일에도 진화대원들은 금강송 군락지에서 불길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날이 밝자 헬기는 저수지에서 퍼온 물을 끊임없이 뿌렸다. 30년 차인 최모 소방경(55)은 차에서 쪽잠을 청하면서 7일째 버티고 있었다. 그는 “몸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수백 년 역사의 금강송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윤두열 대원(53·경북 문경시 산불전문진화대)은 “불을 끄더라도 속불이 있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비라도 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도움도 불길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배대윤 씨(19)는 6일 경북 영주에서 지인들과 트럭에 물탱크를 싣고 울진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배 씨는 “금강송 군락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 모두의 자산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

소방당국이 밤샘 진화에 나서면서 11일 오전 금강송 군락지 방어에 성공했다. 재발화를 막기 위해 특전사 등 860여 명이 투입돼 잔불을 정리하는 등 마무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군락지 일대의 주불은 어느 정도 진화됐다. 잔불도 상당 부분 정리됐다”고 밝혔다.




울진=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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