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일상 속으로 들어온 ‘로봇과의 공존’ 순찰로봇이 공원서 소독하고,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 내려 군사용 정찰로봇 개발도 본격화… 무인점포-공장 늘며 수요 급증세 일부선 “일자리 뺏긴다” 볼멘소리… “새 일자리 만들어” 반론도 많아
서울 마포구에 사는 한 노인이 인공지능(AI) 반려로봇 ‘마포동이’를 안고 있다. 동아일보DB
로봇과 공존하는 시대
한 아이가 “로봇이다”라고 외치며 달려왔다. 물체는 아이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스스로 멈췄다. 기자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측면에 ‘자율주행 순찰로봇’이라고 적혀 있었다. 로봇은 순찰 및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업무를 맡은 공원 직원인 셈이다.
3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시민들이 순찰·방역로봇 ‘패트로버’를 바라보고 있다. 로봇은 위험 상황을 감시하고 방역을 위한 소독약을 분사한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로봇이 점점 우리 일상 속 깊이 파고들고 있다. 로봇 청소기로 집을 청소하고 인공지능(AI) 비서에게 하루 일정을 묻던 수준을 넘어섰다. 홀로 사는 이들에게 ‘반려봇’이 동반자가 되고 식당에선 ‘셰프봇’ ‘바리스타봇’이 늘고 있다.
○ ‘반려봇’ ‘바리스타봇’ 등이 일상 속으로
로봇은 크게 제조업용 로봇과 서비스용 로봇으로 나뉜다. 기존에는 생산 현장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로봇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소비자들의 일상과 함께하는 서비스용 로봇이 급성장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서비스용 로봇의 세계 시장 규모는 가정용(43억 달러), 의료용(36억 달러), 물류용(10억 달러) 등의 순으로 크다. 2020년 기준 의료 로봇(174%), 청소 로봇(95%), 물류 로봇(33%) 등이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가정용 로봇으로는 반려봇이 주목받고 있다. 반려봇 ‘효돌’은 어르신들의 투약 시간에 맞춰 “할아버지 약 드실 시간이에요”라고 말해준다. 정해진 하루 일정을 어르신이 잊지 않게 안내한다.
노인들은 외로운 일상 속에 반려봇과 교감을 느끼기도 한다. 학계에선 특히 치매환자들이 로봇에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로봇을 반려동물처럼 소중히 여긴다고 설명한다. 반려봇이 일찍이 확산된 일본에선 로봇 수리가 불가능해지면 로봇 주인이 ‘로봇 장례식’을 치러주는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도심에선 로봇이 단순한 서빙 외에 직접 요리를 하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볼 수 있다.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라운지랩’이 문을 연 카페 ‘라운지엑스’에선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를 내린다.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담당하는 로봇도 있다.
패트로버를 제작한 도구공간의 김진효 대표(38)는 “패트로버가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일을 대신 해주고 있다”며 “‘1인 1스마트폰’이 보편화됐듯 앞으로 ‘1인 1로봇’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 “로봇이 일자리 뺏는다” vs “새 일자리 만든다”
최근 로봇산업은 주요 선진국의 뿌리 깊은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인구가 부족해지니 로봇이 일을 대신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생활이 확산한 점도 한몫했다. 사람들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인점포와 무인공장 등이 늘면서 로봇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해 인수한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로봇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하지만 서비스용 로봇 시장에선 높은 가격대가 대중화의 장애물로 꼽힌다. 진화된 기술이 적용될수록 생산비가 높아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아마존의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는 ‘부자 장난감’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스트로 판매가는 1000달러(약 122만 원)부터 시작된다.
오히려 로봇이 일자리를 늘린다는 반론도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험한 산불 현장에 로봇이 투입되면 화재 로봇 서비스업이라는 기존에 없던 일자리가 무궁무진 생겨난다”며 “단순 업무는 로봇에 맡기는 대신 생산성이 높은 일에 인력을 집중하고, 이렇게 생산성을 높인 회사는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할 여유까지 생긴다”고 분석했다.
○ “로봇과 인간 공존 방안 마련해야”
이날 공원에서 패트로버를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한지현 씨(22·여)는 “로봇이 더 꼼꼼히 위험물을 관찰하고 사각지대를 돌아다녀 인간의 취약점을 보완하니 안심이 된다”며 “위험한 사람이 공원에 나타났을 때 사람은 겁을 먹을 수 있어도 로봇은 그렇지 않으니 위기 대처 능력도 빠를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사생활 침해나 일자리 감소 등을 우려한 시민도 있었다. 대학생 임태희 씨(24·여)는 “로봇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촬영할 수 있고, 최근 아파트 월패드 해킹 논란처럼 해킹이 될 경우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근처에 사는 주민 남현숙 씨(65·여)는 “은퇴한 노인분들이 경비원 일을 많이 하는데 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어 걱정된다”고 했다.
몸집이 커진 로봇시장에 걸맞게 제도도 발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AI 윤리기준을 내놨지만 로봇의 경우 2007년 윤리헌장 초안이 도출된 후 큰 논의가 없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로봇공학과 교수는 “로봇의 권리 수준을 반려동물에 준하는 수준으로 정할지, 로봇으로 부가가치가 생기면 세금은 어떻게 부과할지 등 큰 틀을 정하는 사회적 숙고 과정이 마련돼야 세부 규정도 만들 수 있다”며 “유럽연합(EU)이 2017년 ‘로봇시민법 결의안’을 채택해 관련 논의를 이어가듯 한국도 본격적인 논의의 장을 열 때”라고 조언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