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지 기자의 반짝반짝 우리별]다회용컵 렌털 기업 ‘트래쉬버스터즈’ 2019년 축제서 다회용기 시범사업… 가능성 확인 후 렌털 기업 세우고 대기업 사내카페에 다회용컵 공급… 컵 수거해 고온-고압으로 살균 다회용 컵 400번까지 재사용 가능… 영화관-경기장 등으로 확장 목표 “지속적인 자원 순환 시스템 구축”
곽재원 트래쉬버스터즈 대표가 서울 성북구 물류허브 사무실에서 다회용 컵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동아일보 DB
한 번 쓰고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일회용 컵은 그대로 쓰레기가 돼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것이 대다수다. 재활용률은 20개 중 하나꼴(5%)에 그친다. 그렇다고 텀블러와 같은 개인 컵을 매번 들고 다니기는 쉽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다회용 컵 렌털 기업이 ‘트래쉬버스터즈’다. 유령을 박멸하는 영화 ‘고스트버스터즈(Ghostbusters)’에서 이름을 따왔다. 유령을 퇴치하듯 일회용품 쓰레기를 격퇴하겠다는 의미다.
‘다시 쓴 것도 다시 쓰자.’ 지난달 8일 찾은 서울 성북구 트래쉬버스터즈의 물류허브 출입문에 붙은 문구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20여 명이 위생모자와 위생장갑, 앞치마로 무장한 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고온에 살균 세척된 컵의 물기를 털고, 건조기에 넣고, 자외선(UV) 소독하고, 파손 여부를 검수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이 컵들은 각 대기업 사내 카페와 탕비실 등에 보내져 일회용 컵 대신 사용된다.
○ ‘축제 쓰레기 해결사’로 출발
트래쉬버스터즈의 출발점은 축제였다. 공연기획자로 축제를 준비하고 열어 온 곽 대표는 쓰레기 문제로 늘 마음이 불편했다. 축제 후 버려지는 일회용품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다.
음악 축제건 지역 축제건 축제에서 음식 판매는 빠질 수 없다. 축제 부스에서는 일회용 컵과 식기를 활용해 관객에게 음식을 판다. 관객들이 사용하고 버린 일회용 컵과 식기는 음식물이 묻은 채 버려지기 일쑤라 분리배출을 건너뛰고 곧바로 쓰레기봉투로 들어간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지역 축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900여 건. 민간 축제까지 더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 나오는 쓰레기의 양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는 얘기다.
곽 대표는 2019년 8월 서울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서울인기 페스티벌’ 축제에서 다회용 식기 세트를 나눠주고 회수하는 시범 사업을 벌여봤다. 관객들이 보증금을 내고 다회용 컵과 식기로 구성된 세트를 받아가 음식 판매대에서 음료와 음식을 사 먹고 식기를 반납하는 시스템이었다.
시범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축제장은 야외지만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 명확해 대여·회수 코너를 운용하기 적합했다. 축제 운영자 입장에서는 쓰레기가 적으니 처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이때 축제 종료 후 나온 쓰레기는 100L 쓰레기봉투 8개에 그쳤다. 전년도 행사에서는 350개가 배출됐다. ‘쓰레기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호평이 인증 사진과 함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퍼졌다.
‘서울인기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성공 덕에 문의가 급증했다. 곽 대표는 “식기 제작과 사업 시스템 정비 등으로 실제 사업은 2020년부터 시작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연말 예약까지 꽉 차 있었다”고 했다. 당시 예약한 축제만 300∼400개에 달했다고 한다.
○ 사내 일회용품, 다회용품으로 대체
다양한 크기의 트래쉬버스터즈 다회용 컵. 김동주 기자 zoo@donga.com·동아일보 DB
직원들 월급 줄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왔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찾아왔다. 비대면 일상이 낳은 택배와 배달 음식 포장재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여기에 기후위기 문제가 글로벌 이슈가 되면서 기업들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타고 트래쉬버스터즈는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빌딩 사내 카페에서 다회용 컵 렌털 사업을 시작했다.
사내 다회용 컵 렌털 사업은 축제와 비슷하다. 입구와 출구가 한정돼 있다 보니 컵을 사용하는 곳과 반납하는 곳이 한정적이다. KT는 사옥 층마다 다회용 컵 수거함을 설치했다. 직원들이 1층 사내 카페에서 음료를 산 뒤 각자 사무실로 가져가 마시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 트래쉬버스터즈는 각 층에 모인 컵을 하루 한 번 회수해 고온·고압으로 살균 세척한 뒤 다시 공급하고 있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듯 편리하게 다회용 컵을 쓰고, 쓰레기는 줄이는 방식이다.
○ 다시 쓴 것도 다시 쓰자
고온에 살균 세척하고 UV 소독을 마친 다회용 컵은 일회용 컵처럼 간편하게 사용하고 반납하면 된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빌딩 내부에 설치된 다회용 컵 반납함. 이곳 사내 카페에서는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판매한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동아일보 DB
최근에는 일반 카페를 대상으로 한 다회용 컵 렌털 사업도 시작했다. 6월 시행되는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와는 별개로 일회용 컵 사용 자체를 줄이기 위한 시도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회용 컵을 직접 세척하기에 인력이나 시간이 부족한 카페 사업자들이 주 고객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다회용 컵 사용 사무실들을 전국으로 넓히는 것도 목표다.
이 외 다회용 컵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무한하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회사 사무실, 회의나 세미나 등 행사장, 대학 캠퍼스 등. 회수만 용이하다면 어디든 가능하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 전에 검토했던 영화관과 장례식장, 운동 경기장 등에서도 조금씩 다회용 컵을 사용하거나 검토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트래쉬버스터즈 이후 다회용기를 렌털하는 사업체들도 여럿 생겨 시장을 키우고 있다.
여러 번 사용하면서 훼손된 다회용 컵은 어떻게 될까. 세척과 검수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묻었거나 파손된 컵들은 한곳에 모으고 있다. 어느 정도 양이 많아지면 다시 만드는 재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우리가 쓰는 PP 재질의 두꺼운 컵은 300∼400번까지 다시 쓸 수 있어요. 그 다음에는 녹여서 다시 컵을 만들 수 있지요. 쓰레기 없이 계속 자원을 쓰는 순환 시스템을 만들 겁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