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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손해볼 것 없는 조건부 통합?[떴다떴다 변비행]

입력 | 2022-03-12 15:00:00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22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내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선에서 경쟁제한이 발생하고, 운임 상승 등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지 처음 공개 됐습니다. 그런데 결과지를 받아든 소비자들과 항공업계에서 공정위 판단 결과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소비자 피해가 예상되는 노선에 대해 공정위가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떴다떴다변비행’에서는 공정위 판단을 두고 항공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소비자 피해는? 아쉬움 남는 공정위의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 조건부 승인>에 이은 두 번 째 시리즈입니다. 공정위의 ‘슬롯 및 운수권 반납조치’의 실효성과 대한항공의 득과 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슬롯과 운수권 반납 “실효성 없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으로 인해 26개 노선에서 경쟁 제한이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표에 나와 있는 노선들인데요. 대한항공의 독점력이 강해져서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 노선들입니다.



공정위는 경쟁제한성이 있는 노선에 대해 “경쟁 항공사의 신규진입 등을 촉진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슬롯·운수권 이전 등을 하는 조치를 부과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항공사가 위 사진에 있는 노선에 신규 진입을 하겠다고 하면, 대한항공은 언제든 슬롯(공항에서 이착륙 할 수 있는 권리)과 운수권(특정 국가에 취항할 수 있는 권리)을 내놔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경쟁을 보장하겠다는 겁니다. 슬롯은 해외 항공사에게도 내놔야 하지만, 운수권은 한국의 자산이기에 우리나라 항공사들에게만 반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내린 조치가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비자 피해를 막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건데요. 그 이유는 국적 항공사들 중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하고 유럽과 미주 노선 등 장거리 노선에 취항할 여력을 가진 항공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가 장거리 항공기인 A330-300과 B787 항공기를 들여오면서 장거리 노선에 취항했거나 취항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항공사들이 운용하는 장거리 항공기는 2~3대에 불과합니다. 수십 대의 장거리 기재를 가진 대한항공과 겨루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죠. 장거리 항공기 2~3대로는 유럽과 미국에 모두 취항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보통 하나의 노선에 취항하려면 항공기가 2~3대는 필요합니다.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 목적지에서 오는 비행기, 그리고 정비 등을 위한 비행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티웨이항공이 A330-300 (340석 규모)을 들여온다고 한들 항공기 항속 거리 등을 고려할 때, 미국과 유럽 일부는 아예 취항을 하지도 못합니다. 또한 앞으로 10년 동안 LCC들이 과연 유럽과 미주 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장거리 기재를 얼마나 들여오겠느냐는 것이 업계의 의구심입니다. 한 LCC 임원은 “장거리 비행기 들여오려면 수백 수천억이 필요하고, 지금부터 준비를 해도 취항에 수년이 걸린다. 코로나로 죽니 마니하고 있는데 장거리 노선은 꿈도 못 꾼다”며 “공정위로서는 ‘경쟁을 보장하려 했다’는 구색만 갖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항공사 임원은 “장거리 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항공사가 없다. 결국엔 대한항공의 독점력이 강화 된다는 말이다. 대한항공도 LCC들이 장거리에 취항 못 한다는 걸 아니까 공정위 조치에 수긍한 것 아니겠느냐”며 “소비자들은 앞으로 비싼 항공 티켓을 구매할 가능성만 높아졌고, 대한항공은 비싼 항공권을 더 팔 수 있는 여건만 조성 됐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LCC들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애당초 통합을 허락해줬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공정위 결과를 보고나니 ‘항공사 위에 국토부, 국토부 위에 대한항공’이라는 업계의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며 “통합을 주도한 KDB산업은행이 국민세금으로 대한항공 지위만 강화시켜준 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공정위 측은 “공정위가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아야 하는 마지막 보루긴 하지만, 한국의 항공업계 발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통합을 아예 불허를 할 순 없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불허를 하기 보다는 경쟁을 보장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항공 산업이 발전될 수 있는 조치가 있다면 그걸 우선 고려한다”고 답했습니다. 메가항공사 출연에 따른 한국 항공업계의 발전도 고려한 판단이라는 겁니다.

●대한항공은 손해 보는 것이 없다?

공정위는 지난해 처음 1차 결합 심사 결과를 밝히면서 대한항공에게 “2019년 수준으로 공급석을 유지하라”고 시정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여기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2019년 수준으로 공급석을 유지했을 때, 여객 회복이 안 되면 천문학적인 손해를 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공급석을 제한한다는 것은 항공 운임을 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땅한 경쟁자가 없는 노선이라면 대한항공은 자유롭게 항공기 공급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경쟁이 심한 노선의 경우 성수기에는 항공사들이 증편을 해서라도 항공기를 띄웁니다.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서입니다. 자연스럽게 항공기 좌석 공급량이 많아지게 되고, 항공 운임이 낮아지게 됩니다. 경쟁이 심하면 운임이 낮아지는 원리죠. 그런데 독과점이 형성된 노선의 경우 공급량을 조절하면서 높은 가격을 받기 더 수월해 집니다. 예를 들어 특정 노선에 200명의 여객 수요가 생겼습니다. A항공사와 B항공사가 180석 짜리 항공기를 1대 씩 넣습니다. 360석이 공급 된 겁니다. 그런데 A사와 B사가 통합을 하면 180석 짜리 2대를 하지 않고, 220석 짜리 항공기 1대를 투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대보다는 1대를 꽉 채워 가는 것이 항공사에게 더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공급 보다 많으니 운임을 높게 책정해도 항공권은 다 팔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소비자들은 비싼 항공권을 사게 되는 거죠. 이런 이유 때문에 공정위가 “공급석을 2019년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한겁니다.

그런데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공정위의 전원회의에서 “2019년 수준을 유지할 경우 여객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 연간 3조원의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완강하게 반대를 합니다. 결국 전문위원 회의를 거쳐서 “노선별 공급좌석수를 2019년 공급 좌석수 대비 ‘일정비율 미만’으로 축소 금지”한다고 조정이 됐습니다. ‘일정 비율 미만’이라는 조건을 단 것인데요. 일정 비율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습니다만, 어느 정도 공급량을 조정해도 된다고 허락해 준겁니다.

이밖에도 2019년 수준으로 운임을 유지하라는 시정 조치를 처음엔 내렸지만, 조정을 거쳐 ‘2019년 기준 수요가 회복되지 않은 경우, 의무 내용 조정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대한항공의 상황을 고려해 공급석 제한과 운임 변경을 어느 정도 용인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공정위 발표 이후 증권가 반응은 대부분 “대한항공이 이번 조건부 승인으로 받은 손실은 그리 크지 않다”였습니다. 위에서 앞서 살펴 본 대로 대한항공은 알짜노선을 많이 지켜냈습니다. 돈이 되는 유럽과 미주 노선도 다른 국적 항공사들의 취항 가능성이 적기에 많이 지켜냈다고 봐야 합니다. 공급석 제한이나 운임 상승 제한 등 대한항공에게 불리할 수 있는 시정 조치도 어느 정도 대한항공 측 의견이 반영됐습니다. 대한항공이 ‘선방’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습니다. 기업 결합은 유럽연합(EU)와 미국, 일본, 중국 등에게서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깐깐한 해외 경쟁 당국을 설득해야 하는 변수가 남았다는 것이 대한항공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과연 해외 당국이 어떠한 조건을 내걸 것인가를 예상해보고 해외 경쟁 당국의 현재 상황과 입장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