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국제 의용군 논란
이근 전 대위가 의용군을 자처하며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이 전 대위는 현지로 추정되는 사진을 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했다. 사진 출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최초의 대한민국 의용군인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해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유튜브 예능 ‘가짜사나이’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치른 이근 전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대위는 6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렇게 적었다. 이어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출국하려고 했으나 한국 정부의 강한 반대를 느껴 마찰이 생겼다. 여행금지국가를 들어가면 범죄자로 취급받고 1년 징역 또는 1000만 원 벌금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고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SNS를 통해 근황을 전하고 있는 그는 “최전방에서 전투할 것”이라고도 했다.》
○ 키이우 방어 투입된 ‘국제군단’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국제군단’에 소속된 의용군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영국, 스웨덴, 멕시코 등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다. 사진 출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여기엔 전직 특수부대원, 참전용사뿐만 아니라 전투 경험이 없는 대학생이나 직장인도 포함돼 있다. 특히 구급대원이나 간호사 등 의료진들의 우크라이나행도 줄을 잇고 있다. 의용군의 대부분은 유럽인이지만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약 3000명이 참전 의사를 밝혔다. 일본에서도 50여 명의 전직 자위대원이 참전을 희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참전한 외국인들에게 향후 시민권까지 발급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국제군단은 7일부터 수도 키이우 방어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적이 뒤섞인 의용군들이 참호 정비 등에 동원되고 있는 것. 국제군단에 소속된 의용군은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장교의 지시를 받는다. 우크라이나 군복과 방탄모, AK소총 등도 지급됐다고 한다. 영국 로이터는 우크라이나의 의용군 배치 담당자를 인용해 다른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급여도 지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의용군이 소속된 일부 부대가 최전선에서 이미 전투를 수행 중이라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로이터는 조지아의 전 국방장관과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소총으로 러시아 무장 차량을 무력화한 일화를 소개하며 “(의용군들은) 전투가 확산됨에 따라 점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향후 의용군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부대 배치 및 훈련 시스템이 안정화되면 국제군단의 대(對)러시아 전투 수행 비중도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러, 시리아 용병으로 맞불…확전 우려
세계 각국에서 의용군들이 우크라이나로 집결하고 있는 현 상황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1936년과도 유사하다. 당시 파시즘 성향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합법적인 선거로 당선된 사회주의 세력과 내전을 벌이자 세계 각국의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정부군을 돕기 위한 ‘국제여단’에 소속돼 전투를 치렀다. 조지 오웰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당대 유명 작가들도 국제여단에 지원했는데, 지원병 규모는 4만∼5만 명에 달했다. 영국 가디언은 현 상황을 스페인 내전과 비교하면서 “주권 국가가 외국인의 참전을 호소한 것은 현대전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시리아 용병을 모집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시리아 내전 경험을 쌓은 이들을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동원하겠다는 것. 시리아 현지 매체는 러시아가 6개월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소속 경비대로 근무할 자원병을 모집 중이며 급여는 200∼300달러라고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징집병인 러시아군과 비교해 시리아 용병들은 10년 가까이 시가전 경험을 쌓아왔다면서 우크라이나 전투가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러시아와의 전투에 투입되고 있는 의용군들을 ‘범죄자’라고 부르면서 “(이들이) 범죄 혐의로 사법 처리될 것”이라며 “국제인도법에 따라 전투원으로 간주되거나 전쟁포로의 지위를 누릴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의용군이 러시아군에게 포로로 붙잡혔을 때 최악의 경우 러시아법에 따라 사형 집행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 “불법” vs “개인의 자유” 각국 입장 엇갈려
우크라이나 의용군 참여에 대한 각국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의용군 참여는 개인의 자유라며 법적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나라가 있고, 한국이나 일본처럼 우크라이나 입국 자체를 법으로 금지한 곳도 있다. 여론도 엇갈린다. 러시아의 침공이 명백히 국제법 위반인 만큼 의용군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들의 모국과 러시아 간 외교 긴장을 염려해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선 “국가적으로 참전하는 나라가 없으니 의용군이 대신 전장에 간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의용군 참여를 적극 허용한 나라로 덴마크가 꼽힌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일 만인 지난달 27일 공개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참전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면서 “우크라이나 편에서 직접 싸우겠다는 사람들에게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의용군 참여를 사실상 허용한 것. 하지만 덴마크 재향군인회에서는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섣불리 의용군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영국은 정부 내에서도 의용군 참여에 대한 찬반이 갈려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부 장관은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가기로 한 영국인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벤 월리스 국방부 장관은 “우크라이나를 도울 방법은 참전 말고도 있을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영국은 정부 정식 허가 없이 외국에 입영하는 것을 법으로 막고 있지만 크림반도 사태 때도 당시 참전한 의용군들을 실제 처벌하지는 않았다. 미국, 프랑스 등은 의용군 참여를 막을 법규 자체를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안전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하지 말라고 강력 권고하는 동시에 국가가 개인의 피해에 대해 경제적 보상 등을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