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소설가·약사
“여기서 나는 당분간 아직 인간이었다.”
―바를람 샬라모프 ‘콜리마 이야기’ 중
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난파당한 배에서 살아남은 네 명의 선원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그중 가장 약한 사람을 잡아먹은 사건이었다. 남은 세 사람은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며 9일을 더 버틴 끝에 구조됐다. 물론 그들은 본국으로 송환돼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두고 열띤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린 그런 질문을 그리도 가볍게 던질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당분간 아직 인간이었다.” 이 문장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겸허함이 담겨 있다. 샬라모프는 자신이 인간이긴 하되 ‘당분간, 아직’이라고 했다. 극한의 바닥에서 가장 무서운 심연을 마주할 때 끝까지 ‘인간’으로 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던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온갖 상황에서, 나 혹은 우리는 너무 쉽게 질문을 던지고, 정의로 충만한 답을 내놓는다. 그런 세상을 향해 샬라모프는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묻는다. “우리는 당분간 아직 인간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김희선 소설가·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