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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무대선 주인공… 상대역은 열정적 ‘건반’

입력 | 2022-03-14 03:00:00

리사이틀-1인극 결합한 ‘페드르’
피아노로 극중 다양한 감정 표현
연주 안종도 “장르융합 공연실험”



7일 독일 함부르크의 엘프필하모니에서 공연된 ‘페드르’. 안종도(왼쪽)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배우 라파엘 부샤르가 페드르의 감정을 모노드라마로 연기하고 있다. 에피파니모먼츠 제공


10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전화를 받은 건반악기 연주가 안종도(36)는 “앞으로 서울에 오래 있게 됩니다. 이번 학기에 연세대 기악과 교수로 임용됐거든요”라고 소식을 전했다. 귀국이 늦춰진 것은 7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리사이틀홀에서 공연한 리사이틀 겸 모노드라마 ‘페드르’ 뒷정리 때문이다.

최근 공연기획사 ‘스튜디오필립안’을 함부르크에 설립한 안종도는 올해 이 공연을 비롯해 세 개의 장르융합 공연을 한국과 유럽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페드르’ 서울 공연은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프랑스 배우 라파엘 부샤르가 모노드라마를 펼친다.

“처음엔 엘프필하모니에서 프랑스 작곡가 라모(1683∼1764)의 건반음악 리사이틀을 가질 예정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부샤르가 타이틀롤(주인공)로 출연한 ‘페드르’를 보았고 그의 연기에 매혹됐어요. 리사이틀과 연극을 합친 공연을 제안했더니 부샤르가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습니다.”

‘페드르’는 17세기 프랑스 작가 장 라신의 작품으로, 프랑스 고전비극의 대표작이다. 아테네의 왕비 페드르는 의붓아들 이폴리트를 연모하며 괴로워하다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이폴리트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전사한 줄 알았던 왕은 살아 돌아오고, 주인공들은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는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내용이죠. 작곡가 라모는 이 스토리를 50세 때 작곡한 첫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에 담기도 했습니다. 라모의 음악도 라신의 극처럼 감정의 폭이 큽니다. 바흐를 통해 알려진 ‘종교적이고 거룩한’ 바로크 음악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죠.”

이번 공연에서 그는 라모의 건반 모음곡 중 ‘프렐류드(전주곡)’ ‘암탉’ ‘이집트 여인’ 등을 연주하며 페드르의 심리를 표현한다. 부샤르는 특별한 장치 없는 무대에서 피아노 주변을 오가며 모노드라마를 펼친다. 연극평론가 조만수(충북대 교수)가 번역한 대사가 자막으로 투사된다. 부샤르가 소개한 프랑스 극작가 겸 드라마투르그(극작술사) 클레망 카마르메르시에가 각색과 연출에 많은 조언을 주었다.

“음악과 대사가 동등한 위치에 있도록 하면서 둘 중 어느 한쪽이 주도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라모는 근대 화성학의 원조로 불리는 만큼 수많은 화성의 변화에 따라 곡을 구성했죠. 그 화성의 색깔이 수많은 감정을 표현합니다. 피아노는 때로는 페드르의 감정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를 비난하는 사람의 감정,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역할 등 수많은 역할을 맡게 됩니다.”

안종도는 이번 공연 이후 슈베르트 음악과 문학, 현대곡이 만나는 공연에 이어 음악과 현대 무용이 만나는 공연을 한국과 유럽에서 공연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부루벨코리아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후원한다. 5만∼7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