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9일 째 이어지면서 전쟁이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 CNN 등 외신들은 미국, 유럽연합(EU) 관계자들을 인용해 “결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며 “그러나 모든 징후는 푸틴이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계속 압박하고 서방의 지원을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라는 1~3차 협상과 외무장관 회담에 이어 14일 온라인 화상회담을 진행했지만, ‘러시아통’으로 불리는 외교관들은 “실무진이 정확한 푸틴 의중을 모르고 회담 내용만 단순 보고하는 것 같다”고 평가하고 있다. 결국 전쟁의 종결도 푸틴이 전적으로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결정이 러시아 내부 여론 악화와 지지율 하락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나아가 푸틴이 축출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 “러시아 권력 내부, 푸틴 축출 움직임 있을 수도”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초대 외무부 장관
코지레프 전 장관은 “러시아는 세계 무대에서 고립되고 서방의 제재로 무력한 상태가 되고 있다”며 “푸틴이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간 막대한 권력을 누렸지만, 축출당한 러시아 제국 차르(황제)들을 예로 들며 “러시아 권력자는 언제든 권좌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상 많은 러시아 황제들이 살해됐다”며 “소련 시절 스탈린은 독살을 당했고 흐루쇼프는 크렘린궁 밖으로 쫓겨났다. 러시아 역사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가득 차 있다”며 “푸틴에 대한 불만과 저항 또한 현재 커지고 있어 유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1953년 3월 1일 ‘절대권력’이던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식사 도중 쓰러졌다. 당시 스탈린이 서방과 핵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자 내부 정치국 차원에서 공멸을 막기 위해 독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스탈린 사후 소련 공산당 제2대 서기장이자 1950, 1960년대 최고 권력자였던 니키타 흐루쇼프 역시 내부 반발로 실각됐다. 푸틴도 과거 러시아의 무소불위 권력자처럼 언제든 축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지레프 전 장관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구소련의 1979~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유사한 결말을 맺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의 친소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서 소련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결정했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조기 전쟁 종결이 예상됐지만 장기화되면서 소련군은 1만5000명의 사상자를 낸 후 1989년에야 철수했다. 이는 소련의 약화와 붕괴의 원인으로 이어졌다.
● “푸틴, 핵무기 버튼은 누르지 않을 것”
코지레프 전 장관은 1990년대 소련 붕괴 당시 외무장관을 지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집권기에도 외무 장관직을 이어갔다. 냉전 종식, 미국과의 협력 증대 등을 주장하며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개선을 유도했고, 1996년에는 국회에 진출하기도 했다. 현재는 미국 마이애미에 거주하며 국제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푸틴이 서방에 대한 핵 공격 등 3차 대전으로 전장을 넓힐 가능성은 적다고 진단했다. 그는 “푸틴은 (지켜야할) 가족과 친구들이 있으며, 핵무기 발사 버튼을 누르기에는 미녀와 고급와인을 너무 좋아 한다”며 “푸틴은 단지 뻔뻔하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며, 이런 점이 서방에게는 고민”이라고 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도 이날 ‘푸틴은 어떻게 권좌에서 제거될 것인가’란 보도를 통해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권력에서 배제된 후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등이 후임자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계속 교착상태가 되고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악화되면 정부 내부나 생활고를 겪는 민중의 반발이 커지고 푸틴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2024년 5선을 노리는 푸틴은 러시아 내부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푸틴은 2020년 7월 국민투표를 통해 연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을 이뤘다. 2024년 4기 임기가 종료되는 푸틴은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역임할 수 있게 됐다. CNN은 “‘21세기 차르’ 푸틴이 종신집권을 노리기 때문에 지지율을 의식할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