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 후 세대갈등 심화
광장서 ‘전쟁반대’ 종이 들었다가 체포되는 러 여성 13일 러시아 모스크바 마네즈나야 광장에 나온 한 반전 시위자가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 서서 ‘내가 이 두 글자로 체포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라며 ‘전쟁반대’라고 적은 작은 종이를 들고 있다(왼쪽 사진). 러시아 경찰이 곧바로 이 여성을 체포해 광장에 주차된 경찰차로 끌고 가고 있다. 이날까지 러시아에서 반전 시위로 구금된 인원은 1만5000명을 넘어섰다. 액티바티카 트위터 영상 캡처
“며칠 전 엄마 휴대전화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게 다 나토 때문이다’ ‘러시아는 스스로 방어에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는 크렘린의 선전을 지인들에게 그대로 퍼 나르고 있더군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해 온 직장인 빅토리야 고크 씨(28)는 “엄마의 휴대전화를 본 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게 제 목표가 됐다”고 했다. “엄마한테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까진 겨우 설득했지만 사촌 언니 오빠들, 삼촌들까지 (설득해야 할) 명단이 한가득 있어요.”
○ 전쟁 두고 러시아 세대 갈등 격화
모스크바에서 기술 컨설턴트로 일하는 드미트리 씨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장 부모 집으로 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찬양 일색인 국영 방송만 보는 부모에게 정확한 상황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13일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일주일간 머물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곳곳을 초토화시키는 영상과 관련 외신 기사를 부모에게 보여줬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떠났다.“아무리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제게 ‘네가 조국을 배신하고 있다’는 문자까지 보내셨어요.”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 머물고 있는 러시아인 올렉산드라 씨(25) 또한 BBC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모스크바에 있는 어머니에게 ‘아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희생되고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사고라고만 하세요. 러시아군은 절대 민간인을 공격 목표로 삼지 않고, 모두 우크라이나군 소행이라고요.”
최근 러시아의 한 유명 블로거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11만 명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가정 내 분쟁이 있느냐”는 질문을 올리자 수백 명의 러시아 청년들이 아래와 같은 부모와의 대화 내용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거 네가 쓴 거니? 너 정말 러시아인이길 원치 않는 거냐?”(아버지)
“대화가 길어지겠네요.”(나)
○ 언론 통제 강화 속 반전 시위 확산
국영 언론을 통해 푸틴 정권을 찬양하는 보도만 접한 러시아 장년층과 소셜미디어, 독립 언론, 외신 등을 통해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자녀 세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연구원은 “전쟁에 대한 의견은 뉴스를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TV를 많이 보는 중장년층이 푸틴 지지 성향이 높다고 설명했다. 8일 미 워싱턴포스트(WP)의 조사에서도 66세 이상 러시아인의 75%가 ‘침공을 지지한다’고 한 반면 18∼24세에서는 29%만 동조했다.푸틴 대통령은 여론 통제의 고삐를 갈수록 조이고 있다. 4일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11일 인스타그램마저 금지했다. 이 때문에 푸틴을 두둔하는 국영 방송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젊은 층과 야권을 중심으로 한 반전 시위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인권단체 ‘OVD-인포’에 따르면 13일에도 러시아 37개 도시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져 850명 이상이 구금됐다. 현재까지 러시아에서 반전 시위 참가로 구금된 인원은 1만5000명을 넘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