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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겨누던 무기, 러 겨누도록”…‘무기 개조’ 정비사 어벤저스

입력 | 2022-03-15 17:44:00


올렉산드르 페드첸코

“우리를 겨누던 러시아군 무기들이 다시 그들을 겨누도록 개조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자동차 관련 TV프로그램 진행자인 정비사 올렉산드르 페드첸코 씨(38)는 지난달 러시아가 조국을 침공하자 자신이 운영하는 정비소 직원들과 둘러 앉았다.

“우크라이나군을 어떻게 도울지 아이디어 회의를 했는데 놀랍게도 직원들 중 상당수가 군용 무기의 작동방식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페드첸코 씨는 주변의 용접공과 기술자들까지 불러 모아 ‘정비사 어벤저스’를 꾸렸다.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전장에서 손상된 러시아군의 무기를 넘겨받으면 아군이 이 무기를 다시 쓸 수 있도록 개조하기 시작하는 게 이들이 스스로 부여한 임무였다.
● 정비사들 ‘무기 개조’ 재능 기부
‘정비사 어벤져스’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러시아군에 맞서 재능 기부를 결합한 조직적인 저항을 펼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15일 로이터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으로 러시아군 장갑차와 탱크 등을 파괴하고 나면 본체에서 중기관총 등 무기를 떼어낸다. 우크라이나 보병이 사용할 휴대용 무기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기계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가진 민간인 기술자들이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 키이우 등에서는 자동차 정비소가 우크라이나군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 ‘지하 무기 제조공장’, ‘사설 병기창’ 등으로 탈바꿈했다. 정비공 등 기술자들은 자발적으로 팀을 결성해 속속 가세하고 있다. 러시아군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에게 나눠 줄 화염병도 이곳에서 상당수 만들어진다.

무기 개조에 참여한 정비사들은 “엄밀히 따지면 현행법 위반이지만 조국을 구하는 게 먼저”라고 입을 모았다. 페드첸코 씨는 “우리는 언제든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무기들을 넘겨받아 실전에 곧바로 사용하고 있다. 그 덕에 키이우를 압박해오는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 농민들, 트랙터로 러 무기 끌어와

러시아군 장갑차들. 뉴시스

우크라이나 농민들도 나섰다. 이들은 거리에서 노획한 러시아군 장갑차, 탱크, 미사일발사차량 등을 트랙터로 견인해 우크라이나군에 넘기고 있다고 13일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도시 외곽에서는 러시아군이 트랙터를 몰고 나온 농민들에게 탱크, 장갑차 등을 빼앗기는 일도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군 장갑차가 농민이 모는 트랙터에 묶여 질질 끌려가자 황급히 뒤쫓아 달려가는 러시아 병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산되기도 했다.

이들 농민들에게는 ‘우크라이나 수송군’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우크라이나에선 숙녀에게 나이를, 남자에게 연봉을, 농민에게 대공미사일 발사차량의 출처를 묻지 말라”, “농민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탱크들을 훔치기 시작한 지 10여일 만에 비공식적으로 유럽의 5번째로 큰 군대가 됐다”는 등의 농담과 찬사가 트위터에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언제든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담하게 트랙터로 전차, 탱크를 노획하는 우크라이나 농부들의 모습은 저항의 상징이 됐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일부 농민들은 전쟁 물자를 수집하거나 고철로 팔기 위해 러시아군 무기를 훔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