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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 낭자한 종교분쟁… 소년은 그 속에서도 꿈을 꾼다

입력 | 2022-03-16 13:52:00

영화 ‘벨파스트’에서 주인공 ‘버디’(오른쪽·주디 힐)가 벨파스트의 골목에서 쓰레기통 뚜껑을 방패삼아 칼싸움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유혈의 종교분쟁을 다룬 영화를 보는데 관객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홉 살 소년 ‘버디’(주드 힐)가 치아를 드러내고 웃을 때는 관객도 긴장을 풀고 환하게 웃게 된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벨파스트’의 배경은 1969년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버디는 벨파스트 골목에서 동네아이들과 칼싸움을 하며 뛰어노느라 신이 났다. 늘 아이들 웃음이 넘치고 어른들은 매일 축제처럼 어우러진다.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벨파스트의 이웃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평화는 이내 공포로 바뀐다. 개신교도 중 극단주의자들이 천주교도들 집에 화염병을 던지는 등 테러를 시작한 것. 마을엔 무장병력이 배치되고 철조망을 두른 바리케이드가 쳐진다.

영화는 극단적인 대립으로 연일 사상자가 발생한 당시의 종교분쟁을 버디의 시선으로 되살려낸다. 버디는 테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짝사랑 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붙일지 고민하는 등 순수한 아홉 살 일상을 이어나간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 등 늘 그를 지지해주는 가족들은 버디가 순수함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그러나 버디는 분쟁이 격화될수록 벨파스트를 떠나는 문제를 놓고 더 자주 다투는 부모님을 보게 되고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엔 영화를 연출한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유년시절이 담겼다. 벨파스트 출신인 그가 위기 속에서도 가족들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우던 모습도 그려진다. ‘벨파스트’는 흑백영화이지만 버디가 보는 스크린 속 영화는 컬러다. 감독의 어린시절 총천연색 꿈을 컬러 영화로 은유한 듯하다. 영화에 빠진 버디의 반짝이는 눈빛은 꿈 그 자체다.

영화는 27일(현지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흑백으로 재현한 1960년대 벨파스트는 컬러보다 더 생생하다. 벨파스트 출신 뮤지션 밴 모리슨이 만들어낸 음악과 다소 거칠게 담아낸 음향은 오래된 추억을 꺼내 보는 듯한 느낌을 배가시킨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88세 노배우 주디 덴치가 가족애를 표현하는 절제된 연기도 관람 포인트. 오랜 세월의 질감을 살려 유년시절을 되살려낸 덕에 영화를 보고 나면 어린시절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