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실정에 눈감아 몰락 재촉한 공영방송 제구실 못하는 방송에 왜 주파수 낭비하나
이진영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MBC ‘100분 토론’에 나와 “공영방송이라도 제 역할을 했더라면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MBC 생방송 프로임에도 “MBC도 심하게 무너졌다”고 정색을 했다. ‘정권교체 10년 주기론’을 깨고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게 된 문 대통령은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당 후보의 패인은 부동산 정책 실패와 조국 사태 두 가지로 요약된다.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진보진영에 7전 6승을 안겨준 서울이 부동산 때문에 돌아섰다. 진보 성향이 강했던 2030세대는 조국 사태까지 터지자 반대쪽으로 대거 옮겨갔다. 이재명 후보가 “부동산 고통에 민감하지 못했다”며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조국 사태에 “아주 낮은 자세로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너무 늦었다.
문 대통령 말대로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진즉 다른 언론처럼 정부 실정에 제동 걸었더라면 뒤집힐 수도 있었을 박빙의 승부였다. 하지만 치솟는 집값으로 민심이 흉흉할 때 MBC는 ‘집값 폭등의 주범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라는 보도를 내보냈고, KBS는 ‘국민과의 대화’를 기획했다. ‘각본 없는’ 방송에서 ‘국민 패널’ 누구도 부동산 세금이나 전월세 부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대신 “대통령님의 영도력” “뵙게 되어 너무너무 영광” “집값 폭등은 투기세력 탓”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웃었지만 시청자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박 사장의 전임자인 최승호 PD는 대선 후 페이스북에 ‘보수언론은 정부를 비판해도 그러려니 하며 신경 쓰지 않고, 진보언론도 정부의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니 상황은 브레이크 없이 굴러갔다’며 “문 대통령은 기조를 너무 늦게 바꾸거나 바꾸지 않아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야당 대선후보로 만들었다”고 썼다. MBC는 선거 막판에 강성 친여 유튜브 직원이 몰래 녹음한 김건희 여사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방송해 ‘비호감’에서 ‘걸크러시’로 김 여사의 이미지 세탁까지 도왔다. 지금쯤 ‘심각하게 무너진 MBC’ 탓에 속 끓이는 여당 인사들이 많을 것이다.
윤 당선인은 “정권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공영방송을 세금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라면서도 ‘공영방송 거버넌스 구조 개선’이라는 모호한 공약만 내놨다. 역대 대선 후보들이 비슷한 약속을 하고도 당선 후엔 인사 권한을 포기하지 않았고, 정권에 충성하는 방송은 정권에 독이 됐다. 공영방송 장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희소 자원인 주파수 써가며 제구실 못 하는 어용방송에 국민도 정권도 또 당할 것이다. 하필 문 대통령의 생일날 간판 음악 프로 엔딩곡으로 ‘Song to the Moon’을 내보내는 공영방송은 너무 아니지 않은가.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