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현 산업1부 기자
대선이 끝난 뒤 국내 기업들의 눈과 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을 경제·산업 정책에 쏠려 있다. 윤 당선인이 줄곧 ‘민간’과 ‘시장’을 중심으로 한 성장 정책을 강조해 온 만큼 기업 경영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 윤곽이 만들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서다.
대선 전후로 만난 기업 관계자들은 차기 정부가 단기 성과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주 52시간제 등에서 문재인 정부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경제 주체의 우려를 외면하고 과속을 거듭해 온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우려다. 정부가 정책의 선의와 명분은 강조하면서 경제 현장에 미칠 영향엔 귀를 닫았던 결과였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은 정부가 성과로서의 ‘숫자’ 맞추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 공급망 재편과 치열해진 경쟁에 글로벌 경쟁력 유지가 어려워지는 기업들, 커지는 자산 격차 등 국가의 잠재성장력을 갉아먹는 악재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책 집행 과정의 면면을 보면 경제 주체가 아닌 대통령의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나 국무회의, 국제무대 발언에서 드러낼 치적 홍보를 위한 정책을 편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려웠다.
취임부터 ‘비정규직 제로(0)’를 천명하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등을 추진했지만 지나친 속도전은 일자리 감소를 불러왔다. 고용시장의 기초체력이 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 정부는 정책 실효성을 재검토하는 대신에 노인 단기일자리를 대거 늘리는 방향으로 감소한 일자리 ‘지표’를 메웠다. 지난해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36만9000명 늘었지만 이 중 60세 이상 취업자 수가 33만 명이었다.
차기 정부가 건네받아야 할 한국 경제의 겉모습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어찌 됐든 코로나 상황에서 고용시장의 지표를 유지했고 성장률도 선방했다.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최대한 일자리를 늘리고 자국중심주의로 급변하는 세계무대에서 묵묵히 분투했던 기업과 근로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서 가능했던 결과다.
하지만 번듯한 지표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점점 줄어드는 30, 40대 일자리, 늘어나는 부양비 부담, 공급망 악화로 고통받는 기업 등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할 과제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음 정부는 당장 숫자로 드러나는 정책이 아니더라도 천천히 경제 체질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숫자 놀음을 위해 경제 주체를 볼모로 잡았던 건 지난 5년으로 충분했다.
송충현 산업1부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