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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없어도 포기않는 이유는”…피땀눈물 담긴 그들의 고군분투기

입력 | 2022-03-17 10:16:00


작가 이송현 씨.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작가를 꿈꿨다. 친구들은 승진을 하고 주택청약을 넣을 때 돈 안 되는 글을 계속 썼다. 펜을 놓으려던 서른한 살, 극적으로 등단했지만 프리랜서의 삶은 여전히 불안했다. “생업을 찾겠다”며 떠나는 선후배를 보면 마음이 쓰렸다. ‘피땀눈물, 작가’(상도북스)를 쓴 14년차 작가 이송현 씨(45) 얘기다.

네 번의 창업, 두 번의 폐업을 겪었다. 곧 폐업의 숫자에 1이 더해진다. 2020년 문을 연 포장마차가 이달 말 장사를 접게 되면서다. 네 번의 창업과 세 번의 폐업. 성공률은 25%. 남은 것은 제일 먼저 시작한 서울 성동구 이디야커피 둔촌점이다. ‘피땀눈물, 자영업자’를 쓴 12년차 자영업자 이기혁 씨(39) 얘기다.

지난달 25일 출간된 직업에세이 ‘피땀눈물’ 시리즈에는 평범한 이들의 ‘존버’(힘들게 버팀)가 담겨 있다. ‘무작정 존버’가 아니다. 마냥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대신 돌파구를 찾는다. 이송현 씨는 동화작가에서 방송작가와 등단 시인으로, 이기혁 씨는 카페사장에서 만화방, 포장마차 사장으로 끊임없이 변모했다. 살아남겠다는 치열함, 그 과정에서 이들이 흘린 피, 땀, 눈물이 200페이지 남짓의 책에 담겼다. 이어지는 시리즈에는 아나운서, 초등학교 교사 등 보통의 직업인들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과정이 소개될 예정이다.


● 펜 잡는 순간 돈과 멀어지지만… 신념으로 글을 쓴다

작가 이송현 씨.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대학원 때 소설을 전공한 이송현 작가는 소설로 등단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딱 1년만 더’ 라는 생각으로 수익 없는 글쓰기를 계속 하던 서른 한 살의 2009년, “마해송문학상 원고를 받는데 지원해 보라”는 선배 동화작가의 말을 우연히 접했다. 반신반의하며 기존에 썼던 드라마 각본을 동화로 바꿔 ‘아빠가 나타났다!’(문학과지성사)를 제출했다. 뜻하지 않게 제5회 마해송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가에서 동화작가로 진로가 바뀐 순간이었다. 그 때부터 장르에 구분을 두지 말고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등단 직후엔 시트콤 작가의 길을 택했다. 학생 때 습작으로 썼던 시나리오를 우연히 읽게 된 김병욱 감독이 ‘면접을 보러 오라’며 전화를 한 게 계기였다. 그렇게 2009년 ‘지붕 뚫고 하이킥’(MBC)의 구성작가로 합류했다. 14일 서울 강남구 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는 “소설 속 대사는 문어체라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트콤 대본을 쓰면서 입에 착 붙는, 날것 그대로의 대사를 쓰는 법을 익혔다”고 말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소재발굴부터 대본 작성까지 두루 경험한 그는 2010년 동시에도 도전했다. 다문화 가정 아이의 아픔을 다룬 동시 ‘호주머니 속 알사탕’으로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에 당선됐다. 동화작가에서 방송작가, 시인으로 끊임없이 외연을 넓혀 온 이 작가는 “전공만 판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들의 삶을 재현하는 것은 똑같아요. 구현 방식만 다를 뿐이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라고 보일 수도 있는 삶의 경로가 부끄럽지 않다”는 그는 “글 쓰는 바닥에서 최고의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게 꿈”이다.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기에 ‘에이틴’ 같은 청소년 웹드라마나, 영화 ‘장화, 홍련’처럼 전래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상물을 만들고 싶다.

끊임없이 한계를 깨 왔지만 여전히 삶은 팍팍하다. 인세로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버겁다. 얼마 전 30대 후반의 한 후배는 “더 늦기 전에 작가를 접고 공무원 시험이라도 봐야겠다”고 했다. “펜을 잡는 순간 돈과 멀어지는 삶을 택하는 거 에요.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타인에게 좋은 기운을 전하는 일이에요. 그 사명감으로 버티는 거죠.”


● 네 번의 창업, 세 번의 폐업… 그럼에도 오늘도 앞치마를 맨다

이기혁 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기혁 씨는 어학 연수차 떠난 과테말라에서 커피를 만났다. 매일 아침 홈스테이 주인 아주머니가 한 잔 가득 따라주는 커피의 향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이디야커피 둔촌점을 2011년 3월 차리며 카페 사장님의 꿈을 이뤘다. 10평 남짓의 공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14일 이디야커피 둔촌점에서 만난 이기혁 씨는 “‘저번에 녹차라떼 진하게 해 달라고 하셔서 이번에도 진하게 탔어요’라고 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단골손님들을 챙겨 드린다. 동업하고 있는 친구는 이 건물 입주회사 부장님 아이의 옷도 사줬다”며 웃었다. 그렇게 그는 같은 자리를 11년 동안 지켰다.

12년차 베테랑 자영업자인 그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을 피해가진 못했다. 이디야커피 아래층에 차린 만화카페 ‘둔디야’는 코로나 19로 손님이 급감하면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 2020년 여름 확진자수가 한자리대로 떨어졌다.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분출될 것이라 확신했다. 폐업으로 서울 주요 상권의 공실도 많았다. 4명의 지인들과 그해 9월 홍대입구역 인근에 실내포차 ‘청포’를 열었다. 카페 마감 뒤 청포로 향한 그는 모두 잠든 새벽, 술과 안주를 나르고 그릇을 닦았다.

이기혁 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사활을 걸었지만 코로나 19는 또 다시 발목을 잡았다. 문을 연지 두 달 뒤인 11월 확진자 급증으로 영업 시간제한이 생긴 것. 적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그는 청포에서의 경험도 자양분이 됐다고 말한다. “술집은 카페보다 손님 하나하나에 더 신경을 써야 해요. 카페는 음료가 나가면 끝이지만 술집은 수저부터 주류, 음식까지 계속 챙겨드려야 하니까요. 손님을 보는 눈이 더 밝아졌어요.”

코로나 19 확진자 급증에 더해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주변에 문을 열면서 매출이 30% 줄었다. 그럼에도 그는 오늘도 이디야커피 둔촌점으로 향한다. 앞치마를 매고 커피머신 앞에 선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 그가 4번의 창업과 3번의 폐업에서 배운 점이다. “조금만 매출이 떨어져도 ‘망하는 건가?’라며 마음이 조급해졌어요. 이제 저 자신과 가게에 대한 믿음을 갖고 버티는 게 정답이란 걸 알아요. 진심을 다하면 새로운 가게가 생겨도, 날씨가 궂어도 저희를 찾아주는 손님이 있거든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