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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의 경이[이준식의 한시 한 수]〈152〉

입력 | 2022-03-18 03:00:00


옥으로 단장한 듯 미끈하게 솟은 나무, 수만 가닥 드리운 푸른 비단실.

가느다란 저 잎사귀 누가 재단했을까. 가위와도 흡사한 2월 봄바람!

(碧玉장成一樹高, 萬條垂下綠絲조. 不知細葉誰裁出, 二月春風似剪刀.)

―‘버들의 노래(영류·詠柳)’ 하지장(賀知章·659∼744)



훤칠한 미녀의 형상으로 우뚝 선 버드나무. 줄줄이 드리워진 실버들의 야리야리한 가지 사이로 봄바람이 헤집고 들어온다. 바람의 자취 따라 가위로 마름질한 듯 파르라니 버들 이파리가 돋아난다. 자연의 손길에 감탄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버들잎의 파릇파릇한 떨림에 절로 탄성이 우러나는 봄바람의 영묘한 솜씨! 새 생명의 고운 자태를 빚어내는 봄바람의 경이 속에 새봄의 생기가 새록새록 피어난다. 바야흐로 봄꽃보다 한발 앞선 싱그러운 봄의 향연이 막을 올리고 있다.

동심 어린 시선으로 자잘한 일상을 그리는 데 뛰어났던 하지장은 소탈한 성품에 술을 무척 즐겼다. 불쑥 낯선 별장을 찾아가서는 ‘주인과 일면식도 없으면서, 마주 앉은 건 숲과 샘이 좋았기 때문’이라 할 정도로 자유분방했다. 그런 그가 호방한 기질의 이백과 만나 의기투합한 건 너무나 당연한 노릇. 첫 대면의 자리에서 이백의 시와 기질에 매료되어 이백을 ‘적선’(謫仙·하늘에서 쫓겨난 신선)이라 부를 만큼 가까워졌다. 어쩌면 하지장은 본인의 시적 성취보다는 이백의 시재와 진가를 누구보다 먼저 평가해 준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날 수중에 돈이 없어 하지장이 고관의 표지인 금구(金龜·금장식 거북)를 저당 잡히고 술을 마셨다는 호쾌한 미담도 전해진다. 그의 애주가로서의 면모를 두보는 이렇게 묘사했다. ‘술 취해 말을 탄 하지장은 배라도 탄 듯 흔들흔들./시야 흐려져 우물에 빠지고도 바닥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지.’(‘음주에 빠진 여덟 신선’)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