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민음식으로 꼽히는 ‘살로(아래쪽 사진)’는 돼지비계를 염장해서 만든다. 우크라이나인의 돼지비계 사랑은 1000년 전 기록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오래됐다. 위쪽 사진은 16∼17세기 우크라이나 지역에 살던 코사크인을 다룬 영화 ‘타라스 불바’의 한 장면. 살로의 식문화도 이때쯤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 캡처·사진 출처 PIXNIO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짭짤하고 고소한 삼겹살은 한국을 대표하는 돼지고기 요리다. 삼겹살은 1980년대 들어서 우리 식탁에 본격 등장했다. 한국 외에도 유라시아 전역에서 돼지비계를 즐기는 나라가 적지 않다. 특히 유라시아 초원 서쪽 끝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에선 염장을 한 생삼겹살이 대표 요리로 통한다. 우크라이나 초원지역의 교류와 그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추위를 이기는 고열량 음식
우크라이나인들은 살로를 얇게 잘라 버터처럼 빵 위에 얹어 먹는다. 강인욱 교수 제공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살로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는 것은 물론 한때 서부 리비우에는 살로박물관이 있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체르노젬’이라는 흑토지대가 발달한 세계의 곡창지대이다. 신선한 곡물과 야채가 풍부한 우크라이나에서 어쩌다 날 비계가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을까. 그 배경에는 다양한 문화가 교차한 비옥지대에서 살아온 우크라이나인의 역사가 숨어있다.
약소국의 강인한 생존력 상징
우크라이나인들의 돼지비계 사랑은 약 1000년 전 ‘키이우 루시’ 시절의 기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 됐다. 키이우 루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이 대다수를 이루는 슬라브인들이 세운 최초의 나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일대에는 동아시아 초원에서 건너온 유목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우선 우리나라 삼국시대인 서기 3세기대에 중국에 패망한 흉노의 일파에서 시작된 훈족의 대이동이 이 지역까지 밀려왔다. 그 직후엔 몽골에서 나라를 만들고 고구려와도 협력했던 유연의 후예인 아바르족이 이곳에 선진 기마문화를 전파했다. 튀르크 일파가 세운 하자르 칸국도 동유럽과의 교역을 담당하며 세력을 키웠다. 여기에 키이우 루시가 멸망한 직후 몽골이 세운 킵차크한국(汗國)까지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살로의 등장은 오랜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역사와 관련이 있다. 16세기 이후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코사크인의 발흥으로 다시 시작됐다. 강인함의 상징인 ‘추드’(변발의 일종)를 한 코사크인들은 독립을 향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살로도 이때를 기점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무슬림 튀르크나 유대인들은 모두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자연히 상대적으로 가장 구하기 쉬운 돼지비계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한 것이다. 돼지비계는 오랜 기간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던 우크라이나인들의 든든한 열량 공급원으로 사랑받았다. 마치 6·25전쟁 직후 널리 퍼진 부대찌개나 곰장어처럼, 다른 이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을 개발한 것이다. 살로가 지금까지 국민음식으로 사랑받는 것도 그들의 강인한 생존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보드카 곁들이는 최고의 술안주
삼겹살은 1970년대 말에야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계가 낀 돼지고기에 대한 사랑은 역사가 깊다. 일제강점기에 나오는 요리책에서도 “세겹살(삼겹살)은 돼지 중에 최고”라 칭할 정도였다. 삼겹살 구이는 비계 특유의 잡내 때문에 식탁에 늦게 등장했다. 비계는 고기 중에서 제일 싸고 인기가 없다. 하지만 냄새를 없애고 비계 사이사이에 고기를 끼워 넣는 종자 개량을 통해 삼겹살이라는 음식이 탄생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모두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의 끝자락에 위치해 유목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고초를 겪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런 배경으로 양국 모두 농업에 기반하지만 다양한 고기의 가공문화가 발달했다. 고기는 또 농경민이 쉽게 접하기 힘든 음식이다. 가난한 두 나라는 돼지비계 요리를 개발해 부족한 음식을 보충하려 했던 것 아닐까. 살로와 삼겹살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최고의 술안주라는 점이다. 삼겹살엔 소주처럼 살로엔 보드카다. 그리고 양배추절임을 곁들인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